[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2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28)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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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28)

“저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예?”

그 말을 하는 양지의 눈에 그만 눈물이 핑글 돌았다. 잔잔하게 갈앉아 있던 아버지에 대한 포한의 앙금이 뜻 안 한 자극으로 아린 몸짓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말하는 니는 애비한테 전화라도 한 통 함서 이웃 늙은이한테도 할 만한 말 한마디 살갑게 한적 있었더나? 송곳 끄트머리 맹키로 빠꼼하기 꼴치보기만 했제. 내가 너거 에미한테는 죄로 많이 지었다칼 수도 있다만 너것들한테는 뭘 그리 큰 죄로 지었더노. 복 있는 부모 가려서 못 만난 너거 잘못은 없더나? 내 우짜다가 낙락장송 끄트머리에 달린 외솔방울 맹키로 태어나서 평생을 요모양 요꼴로 계집 자슥들한테 욕이나 묵고 원수 취급이나 받아야 되는지, 나는 한이 없는 줄 아나? 아이구우- 낸들, 사람이고 애빈데 반들반들 기름기 돌게 처자식 건사해놓고 보고 싶은 맴이 와 없었다꼬 생각하노. 아이구우, 내 쏙에 인병 든 걸 누가 알꼬. 하늘이요 산천이요 말 좀 해보소.”

탁탁 가슴을 치던 아버지는 옆에 비스듬히 놓여 있던 술병을 다시 기울어뜨려 벌컥벌컥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게우듯이 트림을 해가면서 자신의 신세한탄을 아버지는 왝왝 다시 토해 냈다.

“나는 한꺼번에 모들띠기로 쏟아져 나온 인간이 아이라 명산대천에 백일기도를 해서 점지 된 사람이다. 태생이 그런고로 조상의 유업에 귀신 맹키로 홀리갖고 다문 하룬들 다리 쭉 뻗고 잠잔 날이 있는 줄 아나? 자손이 못나서 조상의 터전을 훼정시켰단 소리 듣기 싫어서 발버둥 했던 것 너것들이 알기나 할 끼가? 객지에 나가서 잠을 자도 집이고 담장이 무너지는 꿈을 꾸다가 소리를 지름시롱 깨어난다. 내가 와 자꾸 집밖으로 나가서 떠돌아 댕긴 줄 아나? 마음으로 못 벗어나는 집구석 그렇기라도 벗어나 본기다. 그렇다꼬 혼에 백힌 기 벗어나지는 기가?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 홍수가 지는 날은 어김없이 집이 떠내려가고 쎄까래가 주저앉고 담장이 무너지는 꿈을 꾼다. 쎄까래 한 개 기와 한 장이 절단 나도 내 몸이 다친 것 맹키로 아푸다카모 니가 이해하겄나? 새로 이루고 번성시키지는 몬 해도 물려받은 기나마 놓치지 않고 고시란히 지키는 기 내 할일이라꼬. 그게 나도 모리는 사이에 사라져 버리지나 않나 내 영혼에 박힌 심정을 니가 알것나? 사람한테는 지지금 지고 나온 책무가 있다. 목심을 아끼드키 책무를 다하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인기라. 나는 사나아 대장부다. 참새가 우찌 봉황의 뜻을 알 끼고 말이다. 넘들은 세태도 모르는 사람이라꼬 숭도 많이 보더라만 같은 처지가 안 돼 보모 절대 이해 안 되는 것도 내 알제. 조상의 유업을 복원은 못하더라도 남아 있는 대로나마 확실히 인계를 할라카모 그게 누고?, 호냄이? 니?”

“아버지는 언양할머니의 행적을 뻔히 알면서도 우찌 그런 소리를 합니꺼?”

“덱끼 순! 니는 넘들이 하는 허튼 소리를 믿고 니 목심꺼정 부정하것나. 나는 그리 몬 한다. 내 목심이 소중하고 내 인생이 한시럽어서라도 그리 몬 한다.”

양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꼭대기에다 눈길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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