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통영, 동백섬 수우도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통영, 동백섬 수우도
  • 김귀현
  • 승인 2017.02.0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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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잎 반짝이는 소를 닮은 섬
▲ 벽화에만 남아 있는 아이들.


◇붉은 동백을 줍던 추억을 찾아서

20여년 전, 벌을 치는 지인을 따라 수우도에 한번 간 적이 있다. 봄이 한창이던 3월 말 수우도는 온통 동백뿐이었다. 그리고 사량초등학교 수우분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놀이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내 머리에 남아 있다. 필자의 30대 후반의 수우도는 붉은 동백과 푸른 아이들이 전부였다. 그 추억과 함께 빼어난 수우도의 풍경을 담아오고자 다시 찾았다. 나무가 많고 섬의 모양이 소를 닮았다고 해서 수우도(樹牛島)라고 하는데, 특히 동백나무가 많아서 동백섬이라고도 부르는 수우도에는 해발 189m 은박산이 있다. 달밤에 삼천포 쪽에서 바라보면 동백나무 잎이 은박지처럼 반짝인다고 은박산이라고 불렀다는데, 그 이름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명품 걷기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삼천포에서 유람선을 타고 35분 정도 걸려 수우도에 도착했다. 우리를 맨 먼저 반긴 것은 바람이었다. 어쩌면 20년 전 필자를 맞이했던 그 바람이, 오랜만에 온 나에게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음을 예고해 주는 듯했다.

우리 일행은 수우도항 왼켠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20분 정도 가파른 길을 올라가자 고래바위로 가는 숲길이 나왔다. 고래바위에 서자 비취색 바다와 건너편 사량섬이 한눈에 들어왔다. 빼어난 풍경 앞에서 준비도 없이 갑자기 터져 나오는 탄성, 그 순간에는 감동만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 같다. 고래바위에서 신선대로 향하는 길은 무척 가팔랐다. 신선이 노닐던 신선대에 인간이 오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등산복이 온통 땀으로 젖을 무렵 도착한 신선대, 아슬아슬 낭떠러지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이곳이 왜 신선대라고 하는가를 짐작게 했다. 팔만 치켜들면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 우화등선(羽化登仙)할 것만 같았다.

 
▲ 고래바위 옆에 새끼고래(매바위)가 따라가는 모습.


◇고래의 모자가 다정히 노니는 바다

수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백두봉으로 향했다. 동백나무 숲길을 지나자 벼랑길이 나타났다. 로프를 잡고 90도에 가까운 경사길을 겨우 통과하자, 백두봉 정상까지 다시 로프를 타고 올라야 했다. 무섭기도 했지만 스릴만큼은 만점이었다. 왼켠으로는 고래바위가 새끼고래인 매바위를 거느리고 바다를 유영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오른켠으로는 해골바위가 특이한 모습으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는 사량도 옥녀봉이 아우섬인 수우도를 보살피고 있는 듯 울타리처럼 빙 둘러쳐 있었다. 고요하고 평온한 바다 위로 고래바위와 새끼고래가 다정히 노니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우뚝 솟은 신선대는 해수면에 닿아 있어 해벽 등반을 즐기기 위해 오는 사람도 꽤 많다고 한다. 백두봉에서 바라본 사방의 풍경은 정말 절경이었다. 절경에 빠져 잠시 잊고 있었던 무서움증이 눈에서 다리로 전이되어 백두봉을 내려오려니 후들후들 다리가 떨렸다.

수우도의 최고봉인 은박산 정상 표지판은 얼기설기 쌓은 돌탑에 꽂혀 있었다. 삼천포 와룡산과 화력발전소가 지척에 있는 듯했다. 내려오는 길은 온통 동백숲이다. 드문드문 피어 있는 겨울동백의 은은한 향이 탐방객들의 발걸음을 향기롭게 했다. 산 아래 있는 몽돌해수욕장에서 평탄한 황톳길을 걸어서 수우항에 도착했다. 마을 민박집에서 먹은 떡국엔 수우도 특산물인 홍합이 들어가서 그런지 지금껏 먹어본 떡국 중에서는 최고였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난 뒤, 옛추억을 더듬기 위해 폐교가 된 사량초등학교 수우분교를 찾아갔다. 아이들과 함께 잠깐 공놀이를 했던 자리엔 바싹 마른 잡초들이 무성하게 운동장을 지키고 있었고, 학교 빈 뜰에 세워 놓은 건조대엔 어부들이 잡아온 물메기들이 줄을 지어 매달려 있다. 아이들이 떠난 마을, 담벼락 벽화에만 아이들이 남아 있었다. 천진스럽게 활짝 웃는 모습들이 텅 비어가는 수우리 마을을 더욱 적적하게 했다. 학교 뒤쪽엔 돌담으로 쌓아 놓은 정갈한 모습의 지령사가 있었다. 남해안 일대를 침략한 왜구를 물리쳤으나 왜구의 모함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설운 장군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 설운장군을 모신 지령사.


◇어부들의 염원이 담긴 설운장군 전설

수우도에 사는 가난한 어부가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의 크기가 보통 아이의 배나 컸으며 겨드랑이에 아가미가 있었고 온몸에는 딱딱한 비늘이 있는 반인반어(半人半魚)의 모습이었다. 남해안 일대에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이 아이가 왜구를 물리치고 왜구가 노략질한 곡식을 빼앗아 나누어 주는 등 섬사람들의 안정을 되찾아주었는데 그가 설운 장군이다. 이에 왜구들이 반인반어의 해괴한 괴물이 나타나 어선을 괴롭혀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못하고 굶어 죽어간다는 거짓 상소문을 조정에 올리자, 조정에서는 그 괴물을 잡으라며 관군을 내려 보낸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설운 장군은 어부들을 모아 관군에 맞서 싸웠고, 욕지도 판관의 부인을 잡아가서 아내로 삼아 아이까지 낳았다. 설운 장군이 한번 잠을 자면 사나흘을 잔다는 걸 안 판관 부인은 관군에게 고자질해 설운 장군을 사로잡히게 했다. 장군의 목을 세 번이나 쳤는데도 그때마다 다시 붙자, 부인이 장군의 잘린 목에 메밀가루를 뿌려서 못 붙게 하자 끝내 장군이 죽게 되었다. 다시 왜구들이 노략질을 하자 섬 주민들은 설운 장군을 기리는 사당인 지령사를 짓고 왜구들로부터 편안하게 살게 해 달라고 음력 시월 보름날 제사를 모셨다고 한다.

어찌 실제로 반인반어인 사람이 있었겠나만, 그 당시 왜구의 노략질과 조정의 무능함에 시달리던 백성들의 간절한 염원이 이러한 전설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힘과 비열함이 이기는 세상이 아니라 진실과 양심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시대가 오길 기대해 본다. 푸른 파도로 일렁이는 어부들의 염원이 우리를 응원해 주는 듯, 배가 지나온 물길을 따라 출렁이고 있었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바다에서 잡은 고기를 말리고 있는 풍경.

은박산 정상.
마을 뒷길에 있는 공동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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