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3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31)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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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9 (331)

너그 아부지 안경 하나 사자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곁에서인 듯 생생하게 들렸고 누구 앞에서도 보이지 않던 눈물을 아무도 없는 아내의 묫등에서 흘리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겹치듯이 길을 막는다. 양지는 너무 부끄러웠다.

긴 산맥과 들판처럼 들고 난 데도 표없이 어우러져 있던 부부…. 무슨 형식으로 무슨 공식으로 그들 부부의 관계를 풀이할 수 있을 것인가. 남이 보면 청승스럽고 측은해 보일 꼬락서니가 지금의 자기 모습인 것을 아버지는 개의치 않는다. 갑시다. 집으로 갑시다. 어린애 달래듯이 팔을 껴잡고 집으로 인도할 너무나 만만하고 충직하던 아내는 이제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는 존재라는 것조차 분별 못하는 듯이, 응석인지 투정인지 이해 못할 행동을 보이며 아버지는 고대 어머니의 산소에 앉아있을 것이다.

옆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갑자기 쓱쓱 자라 오른 듯 하늘을 찌르고 있는 잡목들 사이에 갑자기 어린 난쟁이가 되어 그녀는 갇혀 버렸다. 아버지만이라도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가 아무리 소리쳐도 그의 말만은 귀를 막고 듣지 말았어야 했다. 깊이 박혀있다고 믿었던 정신력의 근간이 다시 어이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현태의 말처럼 나는 남들에게 괴물로 밖에 안 보이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결국 어미요 아내가 천직이다. 그걸 애써 부인하는 너, 아닌 말로 네 나이 적의 네 어미는 너와 너의 자매를, 그리고 흔들리는 기둥뿌리라도 붙들고 가정을 지켜냈지만 같잖은 회의와 방황 밖에 너는 뭘 하고 있는 거냐? 내려오는 양지의 뒤통수를 향해 마른 나무와 풀숲을 만든 자연의 생명들이 바람과 합창을 한다.



산소에서 내려 온 양지는 다시 거처로 돌아와서 웅크리고 들어앉았다. 이왕 떠나야할 길이라면 당당하게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길이 막혔다. 암담했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고 창피스럽기도 했다.

한 곳, 한 목표만을 보고 질주할 때는 오기도 원망도 힘이 되어 그녀를 도왔다. 그러나 크고 작은 시련을 직접적으로 겪고 해결하는 동안 외길 한 쪽만 바라보며 비정상으로 쌓아올린 축의 형상이 얼마나 비이성적인 편향으로 자신을 이끌었는지를 다시 절절한 심정으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되었다. 스스로에게 위기감을 느낀 양지는 자신의 속에서 주눅 들어있는 또 하나의 자신에게 안타까운 최면을 걸었다.

“바르고 순수하던 시절이 네게도 있었다. 용기를 가져라. 힘을 내라. 다시 옛날의 당당함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시작한다면 큰 것만을 바라던 예전같이 엇나가지는 않을 거야. 용기를 잃지 마라. 최양지, 너는 남과 다른 사람이잖니. 네 이름을 왜 최양지로 정했는지 그 옹골찬 결심을 결코 잊어선 안 돼!”

양지는 어지럼증을 느끼며 한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다시 무릎을 구부리고 쪼그리고 앉았다. 그 순간, 어디선지 모를 선명하고 힘찬 의식 한 줄기가 그녀의 뇌리 속으로 흘러들었다. 산사람처럼 선명하게 어머니의 환영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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