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담는 그릇
이예준 (지리산고등학교 교사)
영혼을 담는 그릇
이예준 (지리산고등학교 교사)
  • 경남일보
  • 승인 2017.02.0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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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준
나는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글’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오해’를 ‘이해’로 바꾸기도 하고, ‘불통’을 ‘소통’으로 탈바꿈시킨다. 또한 ‘글’은 누군가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어내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에 있어서 ‘글’은 역방향으로도 작용한다. 곧 누군가와의 큰 갈등을 만들어내기도,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글’은 단순한 ‘표현의 도구’를 넘어서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글’이라는 것이 가진 힘을 다시 한번 실감한 것이, ‘최순실 국정 농단’사태를 보며 쓴 친한 지인의 글에서였다. 그 지인은 최근의 사태를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능력이 없어도 누구든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는 나라를 바랐지만 그렇다고 그 정도 능력을 가지고도 그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는 나라를 바라지는 않았다.” 나는 이 글을 보면서 ‘촌철 살인 격으로 접근하고 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러한 ‘글’이 가진 힘을 염두에 둘 때, 현행 교육과정에서 쓰기교육이 너무 도외시돼 있음에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글쓰기 교육 경험 여부를 조사하면 거의가 ‘생각이 담긴 긴 글’을 써보지 못하고 올라온 경우가 태반이다. 고등학교는 어떤가. 고등학교에서도 ‘화법과 작문’이라는 과목이 있지만 이 수업에서 실질적으로 ‘쓰기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데 모순적으로 논술은 대입전형으로 엄연히 존재하니, 고등학교 때까지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입시를 위해서 ‘논술’을 주로 사교육에 의존해서 학생들이 배우니 제대로 된 ‘쓰기교육’이 이뤄질 리 만무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요즘 학생들은 ‘카톡’, ‘페북’ 등에 길들여져 ‘깊이’가 담겨 있지 않은 잡글 혹은 짧은 의사소통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글을 쓰는데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국어교사로서 ‘타인에게 감동을 주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할 수 있는가 심각하게 자문해볼 수밖에 없다. 어쩌면 ‘국어교육’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불통’보다는 ‘소통’을, ‘갈등’보다는 ‘화해’를 이끌어낼 수 있는 말과 글을 잘 구사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 아닐까.

이예준 (지리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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