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2)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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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2)

굿이 끝나면 병원으로 가서 수술 받겠다며 딸을 안심시켜놓고 집안 정리를 하던 평화스럽고 담담하던 모습이었다. 이 굿만 끝나모 인자부터는 너것들 모두 잘 될 기다. 그 순간 양지도 자신의 속에서 기죽어 있는 결기를 부추기며 접힌 무릎을 폈다.

“그렇다. 불탄 자리에 비가 내리면 잔해는 이지러지고 문드러진다. 그러나 불탄 재거름의 거름발은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새싹의 영혼을 일깨워서 기상을 돋우는데 이 모습은 아주 돌올하고 튼튼한 생명력을 갖고 솟아오른다. 나 역시 불탄 자리에서 다시 태어나는 움이 되리라. 어지간히 담금질 되었기에, 여간 불리한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고목이나 커다란 바위 같은 꿋꿋한 기상을 체득한 대로 표현하리라. 나는 최양지니까, 나는 최강양지니까!”



20



내일은 첫차로 이곳을 떠나리라. 작심하고 호남을 만나 점심을 같이 먹고 돌아오던 오후였다.

양지는 마른 억새가 길길이 어우러져 있는 밭둑길 아래 어딘가 낯익은 여인 하나가 쭈그리고 앉아 뭔가를 찾고 있는 것을 보았다.

볕살이 따스하게 모이는 언덕 아래는 벌써 파란 잎사귀들이 다문다문 자라나 있다. 자세히 보면 나물도 있고 마른 풀덤불 속에서 어린 쑥도 갸웃갸웃 고개를 내밀고 있다. 봄맞이를 하는 것도 마음의 여유가 부르는 호사일 것이다. 나물을 캐는 듯 한 여인의 동작에서 양지는 벌써 와서 자리 잡고 있는 언덕 아래의 봄을 의식한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 고종오빠가 가져왔던 음식 중에서 냉이나물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언 손을 호호 불며 쑥 나물을 캐느라 옹송그리고 앉은 할미나 아이들의 궁색스러운 모습만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봄나물을 먹을 때마다 지워진 줄 알았던 어릴 때의 기억이 저지르는 살풍경이다.

양지는 어릴 때 나물을 많이 캐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머니는 궁색스럽게 볼 남 눈을 의식하여 나물바구니를 들고 그녀나 언니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말렸다. 흉년에는 쑥뿌리까지 다 캐먹었지. 어른들은 된장 한 주먹뎅이를 싸들고 먼데까지 가서 한 보퉁이씩 쑥을 캐왔고, 그러다가 낭중에는 송기며 칡뿌리며 산을 할딱 벗겨서 연명을 했고……. 어린애들은 모르는 지난날의 궁핍했던 일화를 전설처럼 되새기곤 했다. 그러나 어쩌다 친구들과 어울려 쑥 나물을 조금 캐왔더라도 검부러기가 반이나 넘는 것을 다듬지도 않고 어머니는 두엄간에다 부어버리곤 했기 때문에 시골출신이지만 양지가 알고 있는 나물은 쑥이나 냉이 달래 정도의 기본적인 것밖에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모직으로 된 커다란 사각 숄을 세모로 접어서 두른 빨간 어깨가 아직은 누리끼리 할밖에 없는 주변의 색채들 속에서 단연 두드러진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림이 아니어서 더 얼른 그녀의 모습은 눈에 띄었다. 저런 화사한 차림을 할 사람은 주위에서 명자네 사람들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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