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생명의 외경(畏敬)
김정희(시조시인· 한국시조문학관 관장)
숨 쉬는 생명의 외경(畏敬)
김정희(시조시인· 한국시조문학관 관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02.0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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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살아 있는 목숨은 귀하고 아름답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 있어서랴. 이른 아침 산책길에 나서면 가진 것 훌훌 벗어버린 나목들이 온갖 허식을 없앤 알몸의 순수로 서 있다. 겨울 숲은 성자(聖者)의 모습처럼 거룩하고 길섶 언덕아래엔 마른 대궁이가 흔들리고 있었다. 큰 나무 가지들은 의연히 서 있는데 웬일인가 싶어 가까이 가서 유심히 보니 한 무더기의 비비새가 풀씨를 따서 먹느라고 풀 대궁이를 흔들고 있었다. 아! 그랬었구나. 살아 있는 목숨들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하여 자연 속에 이뤄지고 있는 수수(授受)의 아름다움은 혼자서 보기가 안타까웠다. 여린 풀포기와 작은 날짐승들의 공생은 우주의 아름다운 질서를 느끼게 하였다.

인간은 예부터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컬어 왔지만 동물의 생태처럼 살생을 하게 되고 스스로의 목숨을 자해하는 것을 보았을 때 소름끼치는 전율을 금할 수가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난 자는 저마다의 소명이 있기에 스스로의 성취를 위하여 살아가는 과정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분수에 알맞은 작은 소망을 가지고 부단히 땀 흘리는 사람, 또한 남의 땀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존경스럽다. 스스로의 땀 흘림은 없이 남의 생존을 짓밟는 무서운 범죄를 보게 되면 그 동물성에 우리들은 경악을 금지 못했다.

인간의 고귀한 영성은 도덕과 법을 만들어 신(神)의 자리를 지향하고 있는데 가끔 짐승과 같은 행동이 우리 사회를 더럽히고 있다. 남의 물건을 탐하여 그 귀한 사람의 목숨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부의 몰지각이 한심스럽다. 단 한 번 뿐인 목숨을 가꾸는 소중하고 고귀한 삶, 스스로의 목숨이 귀중하면 남의 생명 역시 소중하다.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남의 행복을 짓밟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며 모두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아야 하리라.

살아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지어온 죄나 양심의 가책도 되돌아보고 허위나 가식을 벗은 겨울나무로 서 보자. 휘몰아치는 북풍의 회초리로 정신을 가다듬으며 어려운 세상살이를 가늠해 보자. 억척같은 고행이나 수행으로 진리를 터득하는 성자의 마을 같은 겨울 숲을 바라보면 살아 숨 쉬는 생명들에게 외경심이 절로 솟구친다. 남의 생명을 살생하는 일, 스스로의 생명을 자해하는 일은 결코 용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정희(시조시인· 한국시조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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