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3)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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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3)

명자네 사람들이라면 양지에게 전달할 사항이 있어왔다가 기다리는 동안 쑥을 캐거나 나물을 캘 수도 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명자네의 사람들 누구와도 닮지 않고, 몸피가 얇고 허리가 긴 여자에게서는 몸에 밴 도시적인 분위기가 드러났다.

저 여자는 시골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나보다 더 어떤 나물을 많이 알고 있을까. 호기심어린 시선을 여인의 손끝으로 보내며 걷던 양지는 이미 자신에게로 이어져있는 어떤 반가움의 실체에 가슴이 먼저 설렘을 느꼈다. 뜻밖에도 날씬한 뒷모습이 너무 낯익었던 것이다. 추여사였다.

딸처럼 도와주겠다는 말도 부담스럽게 여겼던 추여사였는데, 그가 여기까지 왔다니. 너무 반가웠다. 더구나 이 먼 곳까지 물어 물어서 자신을 찾아왔을 것이라 고적해 있던 가슴에 울컥 파문이 일어났다.



“추여사님 아니세요?”

양지는 감격으로 떨려오는 소리를 지르며 걸음을 멈추었다. 처네처럼 따뜻하게 마른 잎사귀를 뒤집어쓰고 다부룩이 자라나있는 꽃다지나물을 캐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돌려 양지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그녀도 손에 든 것을 철철 흘리며 마주 일어나서 뛰어왔다.

“최 실장!”

그녀를 끌어안는 추여사의 두 팔에는 응축된 반가움이 강하게 실려 있었다.

“동네 사람들 말 들으니 그리 몹쓸 일을 겪었다며? 세상에도, 이를 어째.”

추여사는 대뜸 어머니의 사망 소식부터 입에 올리면서 우정 자기 자식의 상한 곳을 찾는 듯한 안타까운 눈길로 양지의 얼굴과 전신을 수선스럽게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녀의 적극적인 애정표현에 머쓱해진 채로 몸을 맡기고 있는 동안 어딘가로 잠적해 버렸다는 전화가 생각났고 더불어 경계심이 살짝 일었다.

“얼마 전에 전화했더니 어디로 가셨다길래 무척 궁금했어요.”

“갈 데라고 생각나는 게 여기 밖에 없더라고.”

얼마간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겸연쩍어진 표정으로 양지가 먼저 몸을 풀었다.

“동네 아줌마들한테 다 들었어. 어쩜 그렇게 몹쓸 일을 다 겪었어. 난 그런 속사정도 모르고 겉똑똑이라고 욕만 퍼붓고 있었지.”

“집 나가셨다는 말 듣고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절 찾아주시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아요.”

“아이고, 저 밉상스런 말 좀 보게. 그러게 항상 어밋자만 주책이지. 내 딸같이 생각한다고 내가 항상 그랬는데도 귓밖으로 들었구먼. 내가 갑자기 찾아온 게 부담스러워?”

“아, 아녜요. 오신 것만도 반갑고 감사해서 그래요. 저 감정표현에 서툰 것 여사님도 아시잖아요. 애써서 오신 손님을 불편하게 해드리게 된 제 처지가 괜히 궁색스럽고 그래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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