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길과 꽃길
이예준(지리산고등학교 교사)
꿈길과 꽃길
이예준(지리산고등학교 교사)
  • 경남일보
  • 승인 2017.02.1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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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준(지리산고등학교 교사)
벌써 교직 7년차에 접어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처음 교단에 섰을 때의 설렘이나 열정보다는 매너리즘이라는 것이 부지불식 간에 침윤해옴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두려움이고, 그 두려움을 떨쳐내고자 나는 올해 우리반 아이들에게 소소한 이벤트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학생들에게 소소한 감동도 주고 싶었고, 나의 마음의 열정도 다시금 되찾고 싶어서였다.

작년에 매월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했는데, 생각나는 것만 적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타임캡슐이었다. 학생들과 1년후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써서 원통박스에 넣은 후 비닐로 여러겹 싸서 묻었다. 학생들은 내년에 대학생이 돼 있을 자신의 모습을 꿈꾸며 썼던 것 같고, 나는 아이들이 꿈을 이룬 모습을 상상하며 기뻐하는 내 모습을 꿈꾸며 편지를 썼다. 우리는 1년 후의 ‘우리’의 모습을 꿈꾸며, 또 그것을 흙으로 덮으며 행복했던 것 같다.

몇 주 전 경일춘추 글에서 졸업식 이야기를 썼었는데, 그 타임캡슐은 그날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됐다. 그 타임캡슐을 열어서 편지를 보는 순간을 부모님들도 함께하셨는데, 야속하게도 1년간의 세월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빗물에 젖고 훼손되어서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결국은 다 버리게 됐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이뤄 대학에 합격한 상태였으니 어쨌든 그 타임캡슐은 우리가 그렸던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외에도 마니또하기, 모히또 만들어 먹기, 분수 폭죽 터트리기, 자신의 소중한 물건 나누기 등 여러 가지 소소한 이벤트를 많이 했는데, 돌이켜보면 학생들이 참 많이 행복해 했던 것 같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내 안에 열정과 사랑이 얼마나 있는지는 학생들이 제일 잘 알고, 또 많은 학생들은 그러한 것에 보답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10월 10일 나의 생일에 아이들이 해준 소소한 이벤트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 구했는지 아이들이 아침 출근길에(학교 사택부터 교정까지) 꽃길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 꽃들 하나하나에는 아이들이 손수 적은 편지가 꼽혀 있었다. 어쩌면 학생들이 3년 동안 찾아가는 ‘꿈길’을 함께 찾고 걸어가 주는 것이 교사로서 나의 인생의 제일 고귀한 ‘꽃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예준(지리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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