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7)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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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7)

“순진한 최 실장이 그 여편네 내숭을 다 알 수 있었겠나. 이 어리석은 여자가 송미양장 남편한테 글쎄 보증을 섰더란다. 한탕 크게 하자고 밀수를 했는데 들통이 났단다.”

“언제요?”

“그러게 내가 뭐랬누, 저 혼자 의논 없이 찧고 까불다가 한 입에 털어 넣은 거지.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안 믿고 누구를 믿어. 최 실장도 대접 제대로 받은 거 아니잖아. 사돈집에 소문나기 전에 후딱후딱 혼사라고 진행하는데 밸이 틀려서 내가 안 죽고 산 게 다행이다.”

“그게 언제였냐니까요?”

양지가 다시 묻자 생각보다 예민한 반응으로 추여사가 벌컥 역정을 냈다.

“그런 걸 나한테 말했음사 이런 사단이 나게 놔뚜겠나. 혼자 잘나고 똑똑하게 사람 무시하더니 당해도 싸지 뭐.”

양치질을 안 해서 입이 텁텁한 줄 알았다. 양지는 자신이 어디 허공에라도 떠있는 듯했다.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버린 젊음의 흔적. 그 회사로 다시 가지는 않더라도 나는 회사를 키워서 운영해 본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이 차갑고 쓸쓸한 눈길 속에서도 당당하게 버텼다. 거기 어느 곳에 가면 내 업적의 위용이 남아있다 싶은 마음이 있어 시린 어깨를 펼 수 있었는데 그 자랑스러운 업적이 물거품이 되다니.

“최 실장도 선견지명 있었던 것모냥으로 잘 그만뒀어. 나도 그래, 내 잇속 안 따져서 그렇지 지가 날 배신하는데 나는 가만히 있겠어? 나랑 어서 나가서 방이나 괜찮은데 얻어보자고. 앞으로 뭘 해야 먹고 살지 일감도 찾아보고”

추여사는 벌써 세수를 하고 옷만 입으면 외출이 가능하게 얼굴을 다듬고 있었다. 양지는 그녀의 말을 어떻게 알아들어야할지 난감해졌다. 입에 얼른 밥을 떠 넣을 생각이 안나 양치질을 먼저 하는 것으로 세수를 했다. 다시 꼼꼼한 수건질을 하는 척 멈칫거리고 있으려니 추여사는 숟가락을 양지의 손에다 잡혀주며 작정된 음성으로 말했다.

“오늘은 다른 것 말고 나 데리고 촉석루 구경부터 좀 시켜주라. 살림에 잡혀 사느라 진주라 천릿길 노래만 들었지 그 유명한 촉석루 한 번 구경 못했거든.”

추여사가 관광 안내를 부탁하는 바람에 진드기처럼 동거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길이 열리기도 할 기대가 없지 않아 양지는 가벼운 음성으로 말을 받았다.

“진주하면 촉석루가 먼저 떠오를 만큼 촉석루와 의암바위가 유명하기는 해요.”

“나는 진주 기생 논개 이야기가 참 안됐더라. 기생첩이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을 수야 유달시런 정분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자손 전래해줄 기출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전쟁도 진 판에 이판사판 혼자 몸이라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짐승같이 무서운 왜놈 장수를 끌어안고 강물에 뛰어들어 원수 갚을 생각을 어찌 했을꼬. 깍지 낀 손이 안 풀리도록 미리 가락지까지 다 준비해서 꼈더라며? 아이고 무시라. 나는 벌써부터 소름이 쫙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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