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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11)<171>시집 속의 인물, 6.25전쟁 영웅이 되다(4)
김귀현  |  k2@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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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16  21: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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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시집 ‘화계리’ 속에 들어 있는 ‘사찰유격대장 강삼수’ 경위가 보훈처가 선정한 6.25전쟁 영웅이 된 이야기를 본란에서 3회에 걸쳐 다루었었다. 그런 뒤에 보훈처와 산청군과 산청경찰서는 산청군청 앞도로에서 경찰서 앞도로까지를 ‘강삼수 경위길’로 명명하여 표지판을 달았다. 이와 더불어 산청경찰서는 청내에 회의실 이름을 ‘강삼수실’로 하고 팻말을 붙였고, 소회의실 이름은 같은 부대 소속 권영도 부대원(전쟁영웅)의 이름을 붙여 ‘권영도실’로 하여 팻말을 붙였다.

이 사실은 이미 지방지가 다투어 기사를 낸 바 있는데 필자는 이 새로운 사실을 주목하면서 강삼수 전쟁영웅의 이야기를 좀 덧붙여 보고자 한다. 국방부 전쟁사 작가 김창원 씨는 강삼수 경위를 ‘한국전쟁 최고의 명파이터’라 불렀는데 물론 이 부름은 실제 전과에서 나온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62회의 전투, 322명의 적병 사살, 61명의 포로 획득이라는 놀라운 전공이 그 전과이다.

김 작가는 다른 전쟁 영웅들과 강삼수 경위가 다른 점을 다음 3가지라고 말한다.

1)이 놀라운 전공을 단지 10여명의 소부대로서 달성했다. 2)자기가 직접 지휘한 전투에서는 단 한 명의 아군 전사자도 나지 않았다. 3)각전투 현장에서 부하대원들과 꼭 같이 위험을 무릅쓰고 적과 총격전을 벌였다.

김 작가는 당시의 경찰 영웅이라는 사람들은 그들의 전공이 당사자들은 안전지대에서 지휘함으로써 얻어진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사찰유격대는 본서 사찰과에서 직할하는 소규모 특공부대였다. 사찰과는 경찰의 정보담당 부서다. 강삼수 경위가 소속된 산청경찰서는 9.28수복 후에 지리산 아래 만연한 인민군들을 소탕하기 위해 사찰유격대를 설치 운영했다. 강삼수 경위는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출생으로 금서소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쉬다가 면사무소에서 밀던 지원병 독려에 군에 입대했다. 그때 금서면에서는 3명이 지원했는데 한 명은 전사하고 강삼수 경위를 포함한 두명은 귀향했으나 다른 1명은 병사했다.

강 경위는 입대후에 미얀마로 보내져 죽음의 인팔작전에 투입되었다. 일본군 사령관 무다구치 렌야가 주먹구구로 실행한 이 전투에서 일본군 5만명이 전사했고 이 전투는 일본군이 영국군에게 대패한 처참한 것이었다.

강 경위가 활동했던 지리산 동부지역 일대의 당시 상황을 필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한밤중/ 머얼리 공 공 공 개 짖는 소리/ 데불고 동네 초입에 파르티잔 들면/ 에때부터 온동네사금파리 떨듯이 새파라이/ 질렸어/ 다시 쿵 쿵 쿵 군화발짝소리 들리고/ 개 짖는 소리 여기저기 콩 콩 콩 요람하면/ 두서너채 건너 싸립문에 파르티잔/ 당도했어/ 이때부터 턱도 없는 기관총 소리/ 하늘 찌르고 / 그 소리 신물나서 잠시 쉴 동안/ 군화 발짝 소리 쿵 쿵 쿵 날 살려라 사라지면 / 턱도 없는 기관총 소리 / 죄없는 밤하늘만 죽자 사자 찔렀어’(시 <파르티잔 보투>)

강삼수 경위의 매복 침투조는 그 이후부터 적진으로 침투해 들어서 전과를 올리는 경천동지할 작전이었다. 이때를 잘 피해 무사히 지리산 아지트로 드는 파르티잔은 살고 이를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걸려든 파르티잔 보투 부대는 전부 사살되거나 생포가 되는 신세가 되었다. 파르티잔 정순덕 부대가 어느날 강 경위 부대를 탈출한 뒤에 산 봉우리에 올라가 강삼수 부대를 향해 “삼수야 날 잡아라”하고 외쳤다.(실록 정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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