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9)
“이 손 놓아. 다 필요 없어. 세상에 누가 나를 알아주겠어. 그래 사람이 사람을 믿고 의지하다니. 어리석지, 이 등신, 바보천치가!”
추여사는 길게 뻗은 다리를 두 주먹으로 자학하듯 쥐어박으며 중얼거렸다. 전날의 추여사가 아니었다. 사장 집에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을 안주인처럼 당당하게 맞이하고 보내던 추여사는 남의 집 가정부라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무색하도록 알뜰하고 부지런했으며 자부심에 찬 동작으로 밤낮없이 건실했다. 특히 양지에게는 이상하리만큼 품지고 따뜻하게.
“추여사님, 미안하지만 제 물음에 대답부터 먼저 해주세요. 병훈씨도 아들처럼 키우셨는데, 병훈 씨 혼삿날이 코앞이잖아요.”
“집구석이 거덜 난 것보다 강 사장 그년 사람 달라진 게 더 속상했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 보라고 내 말 안 듣고 까불다가 얼마나 오래 가나. 제가 말은 사장 질한다고 설치고 다니지만 아직 나만큼 모르는 게 있지. 집에 사람 들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그걸 모르는 거야.”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서 추여사는 지금 정상이 아니었다. 그것도 자신이 가장 필요하리라 싶은 시기에 강사장을 버리고 떠나온 것으로 자신도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복수심 비슷한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지는 언뜻 또 다른 의혹에 눈을 떴다. 우선 그녀의 심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 내야했다. 그럴 양이면 뜸을 들여 시간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양지는 짐짓 가여운 음성으로 추여사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속삭였다.
“참 여사님도 전 농담도 못해요? 어서 일어나서 촉석루 구경이나 가요.”
양지의 말에 대번 반색을 하며 추여사가 일어서는데 무겁게 들고 온 옷가방까지 같이 들고 갈 참이다.
“손수건 한 장만 챙기고 그건 두고 가요. 도둑 손 탈 중요한 물건이라도 있어요?”
양지가 한 농담에 자극받은 기색을 풀지 않던 추여사는 옷가방 속에서 제법 무게가 있는 작은 가방 한 개를 꺼내 부득부득 메고 나섰다.
시내로 나온 양지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둔 채 추여사가 원하는 촉석루와 의암바위부터 안내를 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과 짜 맞추어 보는 진지한 눈빛으로 시누대 사각거리는 가파른 성벽 주위 경관을 둘러보는가 하면, 아아 진주 남강-,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강물을 퍼서 손을 씻고 물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특히 논개의 사당에서는 자못 감탄어린 시선을 붙박아놓고 움직이지를 않는다. 참 예쁘게도 생겼다. 저런 사람이 우찌 그런 당당하고 모진 결심을 했을꼬. 혼자 중얼거리기도 해서 양지는 자신이 아는 대로 남원 광한루에 비치된 춘향의 얼굴과 똑 같은 미인도라는 것을 말할까 말까하다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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