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새로운 출발을 기원하며
길람 신애리(진주 수정초등학교 교사)
[교단에서] 새로운 출발을 기원하며
길람 신애리(진주 수정초등학교 교사)
  • 경남일보
  • 승인 2017.02.1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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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람 신애리(진주 수정초등학교 교사)


여기저기서 먼 길을 나르는 연습과 새둥지를 찾는 활동이 시작된 교단의 이월은 철새 떼의 이동만큼이나 부산하고 섭섭하다. 한 학년을 함께한 아이들, 학교라는 직장에서 하나 꿈을 좇아서 활동한 동료들과의 이별이 늘 준비돼 있는 시간이다. 교단은 일 년 단위로 새겨진 눈금을 가진 탓에 일 년만큼만 투쟁하다 흩어지길 반복한다. 이년, 삼년 긴 시간을 요하는 과제는 교단 눈금자에 비춰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선생님은 언제까지 계실 거예요?” 삼 년 전 우리 반의 어머님 한분이 질문을 하셨다. 시조쓰기를 매일 아침 가르치는데 이 글쓰기 시간이 언제까지 가능한가를 묻는 질문에 “이 아이들이 학교를 떠날 그때가 제가 떠나는 때일 것입니다.” 아침마다 칠판 한가운데는 시제가 버티고 있고 그날의 시제를 붙잡고 하얀 백지 위에다가 생각을 쏟아붓는 연습이 시작됐다.

“간단하게 우리주변의 자연을 잘 살펴보는 것으로 출발해보자.” “나의 이야기들을 기억해내고 세 줄로 엮어내는 것이 시조를 쓰는 일이야.” 이들이 만든 시조집이 ‘앗! UFO다.’이다. 처음으로 만나는 시조쓰기는 컴퓨터 게임이나 영어 읽기와는 전혀 다른 이해불능의 존재였다. 우리 것임에도 어렵다고 투덜거리며 시조를 쓴 그 아이들이 중학교를 간다.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 멀리서 달려와서 철퍼덕 안기면 이제는 고개를 들고 위로 쳐다봐야 하는 얼굴들이다.

교실 앞문 쪽으로 키 큰 그림자가 서성거린다. “누구냐? B이구나.” 4학년 때 담임을 한 적이 있는 6학년 졸업생이다. “선생님께 인사드리려 왔어요. 그래 중학교 가서는 뭘 하고 싶니?” “컴퓨터 자격증을 많이 따려고 해요. 6학년 때 이미 2개를 땄어요.” 그렇게 멋진 일을 꿈꾸고 있다고 당차게 이야기하는 그 녀석, 4학년 때는 꽤나 개구쟁이였다. 시조로 여러 번 상을 받은 기억을 제일 멋진 일로 간직한 녀석이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졸업시즌마다 들려오던 정겨운 노랫소리도 지금은 잊혀져가는 추억 가운데 하나이다. 초등학교란 유년의 교실을 벗어나 뜨거운 청춘의 시간을 던져줄 중학교의 교실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시간, 커다란 가방에 매여 간다고 느꼈던 아이들이 이제는 그 가방을 넉넉히 매고 간다. 무거운 가방도 무겁지 않게 이별의 아쉬움은 슬프지 않게 고마운 마음만 가득히 담아.

 

길람 신애리(진주 수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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