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에 사람 되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있다. 바다에 한 눈먼 거북이 있는데 이 거북이 백 년에 한 번 물 위에 떠오를 때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는 한 나무의 유일한 구멍에 우연히 머리를 맞추는 일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만물의 으뜸으로서 주어진 시간 동안 보람 있는 삶을 이루어내는 사람이 된 것이야말로 지극한 행운이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이렇게 되기 어렵다는 사람이 되어 사람답게 살지 않는다면 참으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모습이 참 사람답게 사는 것일까.
사람의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은 역사와 문학에 잘 드러난다. 실제 일어난 일인 역사에는 때로 예측불허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어 소설 같은 문학보다 그 인기가 월등한 예외도 종종 있다. 하지만 역사는 상상력이 개입될 수 없지만 문학은 현실의 바탕 위에 상상력을 가미한 것이라 보다 흥미진진할 경우가 많다.
수많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사람다운 사람은 누구일까. 악인이라고 불릴 사람은 당연히 그 자리에서 제외될 것이다. 이 만 명 중에서 한두 명일 악인을 제외한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가장 사람다운 사람일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악령’에 나오는 ‘끼릴로프’라는 인물은 사람이 그 한계를 벗어나 신의 영역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의 의지로 끊을 때뿐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소설 속에서 절반쯤 기어코 성공하기는 하지만 이런 사람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다. 심지어는 내 자신마저도 내팽개치는 사람이다. 악인은 아니더라도 사람답다는 말을 붙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을까. 나만 옳다고 믿다 보니 나 자신의 행복마저 팽개친 그런 사람이.
굳이 말을 하라면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 나오는 ‘용이’라는 인물은 어떨까. 화려한 삶은 아니더라도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떠나 사람답게 사는 것을 택한 사람 말이다.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게 없다는 말이 있다. 마침 봄이다. 사람다움의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울 궁리를 할 때다.
정삼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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