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당명만 바꾼 자유한국당과 우리나라 정당사
이웅호(경남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경일포럼] 당명만 바꾼 자유한국당과 우리나라 정당사
이웅호(경남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경남일보
  • 승인 2017.02.2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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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촛불의 민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총체적 국가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보수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국민 앞에 책임을 다하는 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하여”라며 새누리당은 탄생한지 5년 만에 간판을 내리고 지난 13일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개편했다. 그러나 필자의 눈엔 총체적 위기극복을 위한 일말의 노력이나 국민 앞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단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의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보여질 뿐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정당사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어 위기극복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한 기업이 생각난다.

1982년 미국 시카고의 한 작은 마을에서 세계적인 제약업체인 존슨앤존슨이 제조, 생산하는 타이레놀에 누군가 독극물인 청산가리를 몰래 투입해 이것을 복용한 7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직후 진통제 시장의 리딩 브랜드(leading brand) 타이레놀의 미국 내 시장점유율은 35%에서 6%대로 급락하는 위기상황을 맞았다. 고객에게 정직과 책임 있는 대응으로 시민의 찬사를 받아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바꿨다. 그러나 회사 명칭도 약품명도 바뀌지 않고 문양도 그대로다.

기업이건 정당이건 조직에 위기가 왔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의 방안은 ‘원인에 대한 정직한 인정과 책임 있는 대응’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당사에서 수많은 정당이 명멸(明滅)해 왔지만 한 번도 책임 있는 대응으로 국민에서 진솔한 적이 없었다. 정당이란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를 말한다. 따라서 공자는 “올바른 정치는 정명(正名)에서 출발한다”고 했지만 우리의 정당들은 본질보다 허울에만 매달려 문제가 생기면 간판만 바꿔 다는 행태가 지속된 것이다. 이에는 단지 선거만을 위하여 급조하는 행태로 특정 대선주자를 위해 만든 소위 위인설당(偉人設黨)과 선거에서 패배한 뒤 정강은 그대로인 채 간판만 바꿔 다는 ‘신장개업당’으로 대별된다. 이는 1948년 헌정수립 이후 우리나라 정당들의 평균 수명이 2.5년에 불과하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특이한 점은 2000년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는 것이다. 2000년 이전에는 소위 3김(金)을 중심으로 인물 위주의 위인설당이 대세였음에 반해 2000년 이후엔 위기 때마다 본질은 그대로인 채 허울만 바꾼 ‘신장개업당’이 주류인 셈이다. 이는 여야를 불문하고 공통된 현상이다. 국내 보수정당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을 거쳐 자유한국당으로 변신해 왔으며, 전통야당은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민주당→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으로 변천해오니 정당의 수명이 30개월도 채우지 못하는 부끄러운 정당사가 된 것이다. 민주주의 본산인 미국의 민주당은 1830년에 창당됐고, 공화당은 1854년에 창당돼 190년 가까이 당명을 유지하고 있다.

70년의 한국 정당사에서 현존하는 원내 정당 중 3년이 최고(最古)라는 웃지 못할 현실에서 이제 부정적인 사건과 연관된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짓는 ‘브랜드 세탁’은 지양해야 한다. 국민에게 정직하고 책임 있는 정강정당과 패거리 정치의 원인인 계파정치를 청산하고 정책정당으로의 구조변경이 돼야 한다. 또한 한국 정당의 고질인 ‘누구의 당’이란 체질 청산이 급선무다.
 
이웅호(경남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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