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4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44)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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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44)

저를 의지하기 위해서 찾아왔던 그녀가 버림받은 심정의 괴로움을 잘못 삭여서 극약을 먹었다는 사실은 마음 놓고 있다가 몽둥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었다. ‘근사미’는 농약의 일종인데 둥치를 자른 아카시 나무의 나이테 부분에다 약물을 칠해 놓으면 뿌리까지 말려 죽이는 독한 약이다. 양봉업자들에게는 풍부한 밀원을 제공하는 이득 되는 점도 없지 않지만 이 나무의 지나친 번식력에 대한 폐해도 적지 않아 대개의 농가에서는 이 약을 갖추어놓고 있었다. 싱싱한 나무도 말려 죽이는 극약을 사람의 연약한 내장이 흡수하면 그 참혹함이야 말해 무엇 하랴. 차마 목격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급한 목소리로 정자어멈을 향해 외쳤다.

“병원에 연락은 했어요? 전화는 어딧어요?”

“병원은 소용 없일끼야. 아무리 쪼맨 남은 기라 캐도 약이 좀 독해야제. 쓰던 농약 농 안에 여놓고 ㅤㅆㅚㅅ대 채우나. 변솟간에 놔둔걸 그리 할 줄 누가 알았것노. 마, 이리 될 줄 알았음사 내 좋다꼬 찾아온 사람을 좀 잘 대해주지.”

“약은 얼마나 있었어요? 양이 말이예요!”

그새 소문을 듣고 몰려온 일 없는 노파들이 울을 만들고 선 가운데 한 노파가 또 다른 노파에게 담배를 꺼내 권하며 수군수군 사건의 전말을 주고받는데 눈으로는 양지를 흘끔흘끔 곁눈질한다. 끝부분은 자기들 끼리 주고받는 말이 되었지만 양지의 귀에는 몰인정에 대한 난만한 비난의 화살이 되어 박힌다.

양지는 도저히 추여사의 주검을 확인할 자신이 없어 마당가로 뛰어갔다. 노파의 말마따나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렇게 제 입장만을 생각해서 내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 사장에게 받은 인간적인 배신에 대한 상심이 그렇게나 큰 부피였던 것을 간과했음이 불찰이다.

양지는 정자어멈으로 하여금 추여사가 고통스럽게 뒹굴고 있을 안방에서 전화기를 꺼내 오게 한 뒤 망연하게 전화기를 안고 앉아 있었다. 다음 동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같이 살자고 애원하던 슬픈 눈빛이 확대되어 나타났다. 어머니가 안계시니 어머니 노릇을 대신하며 살고 싶다던 음성도 옆에서 지금 하는 말인 듯 되살아났다. 자신에게 여성으로서의 따뜻함과 포용력이 조금만 있었다면 나중에는 어떻게 되든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뉘우침이 새삼 망막을 뜨겁게 했다.

그러나 변명은 있다. 추여사의 동거를 허락하는 것은 만약의 경우 강사장이 보일 후속조치를 추여사와 같이 감수하겠다는 묵약도 된다. 다시 익애의 사슬로 조이고 들 추여사의 빗나간 사랑을 받아들여서도 안 되지만 떳떳치 못한 돈으로 양지의 약점을 파고 든 추여사의 계산을 무산 시킨 점은 너무나 온당했다. 아무리 살아온 이유가 무엇이었던지 의문스러운 지경에 놓여있다 해도 양심적이지 못한 일에 분노하고 저항할 이성적인 능력만은 창창하게 지니고 있어야한다.

하지만 양지는 자신이 너무 스스로의 결백만을 염두에 둔 나머지 추여사의 상심한 마음을 전혀 배려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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