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聞香)
김정희(시조시인·한국시조문학관 관장)
문향(聞香)
김정희(시조시인·한국시조문학관 관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03.01 10: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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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당사실 풀어내는 봄 햇살이 따스하다. 절후 상으로는 우수도 지나고 분명히 봄의 문턱에 들어섰는데 먼 곳에서는 봄눈 소식이 빈번하고 꽃샘바람이 휘몰아치니 처마 밑 풍경이 청아한 소리를 낸다. 매서운 찬바람이 발길을 돌려서다가 몇 번이나 다시 다가서곤 하는 사이 그리운 매화는 어디에 피고 있는 걸까. 눈 속에 피는 매화꽃이 지금쯤 피어나리라는 어림짐작으로 꽃과 향을 찾아서 나섰다.

집에서 가까운 새벼리 산 오름길에 서 있는 매화나무를 보러 갔더니 나무는 앙상한 빈 등걸에 좁쌀 티 같은 꽃봉오리를 머금고 있었다. 산 중턱에 다다르니 수많은 매화나무 가운데서 한 나무의 중간쯤 햇볕 드는 가지에 일지매 분홍꽃이 작은 우주가 열리는 듯 입술을 방긋 여는 순간이었다. 불티보다 작은 꽃눈이 자라서 벙글기에는 아직도 먼 듯한데 제일 먼저 첫 눈을 뜨려는 꽃이 나를 불렀는가 보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꽃처럼 한 번 피어보기 위하여 많은 추위와 고난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꽃이 지면 열매를 맺어 성취를 이루는 것까지도 비슷한 원리를 가졌다.

예부터 한문 문화권인 동양 삼국에서는 매화의 품격을 극진히 칭송했다. 그를 좋아한 까닭은 다른 꽃들이 피기를 외면하는 설한풍 속에 꽃을 피우는 맵고도 고결한 기품이 가난한 선비를 닮았다 하여 한사(寒士)에 비유했고 고난을 뚫고 앞서서 깨달음을 실천하는 선각자로 견주어졌기 때문이었다. 매화나무는 소나무, 대나무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문필가의 사랑을 많이도 받아 왔고 매, 난, 국, 죽의 앞자리를 지켜 왔었다. 흰꽃을 피우는 백매와 분홍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꽃망울을 어렴풋이 물들이고 있는데 연분홍 첫 꽃이 손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서 염화미소(拈華微笑)를 띠우고 있다. 암향을 흩뿌리며 무슨 말씀을 전하려 함인지….

기쁘고 즐거운 날보다 슬프고 괴로운 날이 더 많은 것이 인생살이가 아니던가. 당면한 현실이 아무리 괴롭고 힘들지라도 마음은 평화롭게 얼굴에는 미소를 잃지 말라고 소리 없는 말씀을 전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이며 둘이 아니다. 만물의 형상 속에 숨겨져 있는 본성을 찾고 진리의 향을 찾아나서는 나그네 길에 있는 우리들. 사람은 사람답게 살고 정치는 정치답게 해나가야 할 위기에 직면하여, 보다 차원 높은 삶을 이루기 위하여 꽃인 듯 맑고 향기로운 삶을 이어감이 어떠하리.

 

김정희(시조시인·한국시조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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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배 2018-05-11 13:25:07
혹시 한국시조를 한자 원본으로 볼 수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준배. chombe@nab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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