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4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48)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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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48)

하다가 양지는 화끈 얼굴을 붉혔다. 저도 몰래 늘 기피하던 아버지란 단어가 입에서 튀어나왔던 것이다. 순간 아버지의 표정도 달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양지는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오래 감정을 지속시키고 있지는 않고 이내 사무적인 음성을 지어 곁에 있는 호남에게로 어순을 돌렸다.

“모시고 들어가라. 장의사에서 다 알아서 할 거니까 여러 사람이 있을 필요도 없어.”

“알았어.”

서운함이 내비치는 얼굴로 대답한 호남이 아버지 손을 끌고 앞장서 나가자 미적거리고 있던 아버지도 마지못한 듯 따라 나갔다. 그들이 사라진 곳으로 눈길을 보내고 있던 양지는 갈하게 찢어져 있는 입술을 물며 이것은 무슨 오기인가,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곧은 막대기 같은 성정을 탓했다.

자신이 구급신호를 보내자 고종오빠가 달려와 주었고 호남이와 아버지까지 나서서 절차에 따른 조언이나 이웃사람들의 비난어린 시선까지 막아준 고마움도 모른 척 딴청만 부렸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 여겼지만 둘러보면 보이지 않는 질긴 끈으로 이리저리 묶여서 더불어 사는 거였다.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실감하고 있었음에도 표현은 또 엉뚱하게 나오고 만다.

강사장은 여전히 쏟고 싶은 감정의 분출을 토하느라 오열 같은 욕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잔에서 철철 넘치는 소주를 제단 위에다 얹음과 동시에 ‘유인추영자지영’이라고 쓰인 지방을 향해 삿대질과 함께 뜨거운 기운을 훅훅 불어냈다.

“야, 추영자. 너 정말 유감이다. 네가 나를 몰랐듯이 나 역시 너를 정말 몰랐다. 니년이 이럴 줄 정말 몰랐단 말이야. 내가 너한테 그렇게 잘못한 게 뭐냐. 도대체 뭔지 말해봐. 네가 최양지를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건데 나까지 최 양지를 좋아해야 된다는 법은 없다. 이거는 순전히 억지다. 너하고 나하고 한솥밥 먹고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거야. 난 너를 남 같지 않게 생각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성의는 다했다고 생각한다. 언감생심 내 며느리까지 네가 고르겠다고 우기다가 이런 식으로 날 배신하다니. 나 모르게 약 먹고 병원 다니는 건 왜 숨겼어. 아무래도 억울한 건 나다. 야, 말 좀 해라 추 영자 이년아! 야, 이년아!”

넋두리는 길어질 것 같았다. 간 줄 알았던 호남이 귀 기울이고 문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홧김에 늘어놓는 말속에 언니랑 연이어져 있는 어떤 단서라도 더 듣고 싶은 것이다. 제상에 올렸던 잔을 들어 입에다 털어 넣은 강사장은 다시 잔을 부어서 제상에 올렸다가 스스로의 입에 들어붓기를 거듭하며 주기가 오르는 대로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에 출렁출렁 쪽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추영자, 너, 무엇 때문에 돋았는지 나 모르지 않아. 넌 내가 마치 남자 좋아하다 사기 당한 것처럼 생각하더라만 그게 아니라고 했잖아, 내가. 그리고 너도 우리 병훈이 네가 낳은 아들 이상으로 애꼈잖아. 그런데 너무 황당하게 날 공격했어. 우리 병훈이 짝은 최 실장이 돼야지 그렇잖음 회사 말아먹는다고, 생뚱맞은 공갈협박도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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