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키움 교실 활성화 사제동행 일본 탐방 1편
꿈키움 교실 활성화 사제동행 일본 탐방 1편
  • 강민중
  • 승인 2017.03.0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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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교육청 주최·경남일보 주관
<상> 일본 북큐슈 역사유적지

경남도교육청이 주최하고 경남일보가 주관하는 ‘꿈키움 교실 활성화를 위한 우리역사 바로알기 사제동행 일본탐방’ 행사가 지난달 21일부터 24일까지 3박 4일간 일본 북큐슈 역사유적지 일원에서 개최됐다. 거리로는 가장 가깝지만 마음으로는 가장 먼 나라 일본, 그중에서도 이번에 돌아본 북큐슈지역은 전통적 한일관계가 밀접하게 엮여 있는 지역이다.

조선통신사 사절단 머물며 객관으로 사용한 ‘아카마 신궁’과 ‘조선통신사 상륙 기념비’, 청일강화기념관, 백제의 흔적이 남은 유적 ‘다자이후청정터’, 아시아 전역의 유물을 볼 수 있는 ‘규슈 국립 박물관’, 조선의 도공들이 도자기를 만들던 마을인 ‘아리타 도자기 마을’, 17세기 끌려간 조선인 도공 ‘이삼평’이 도자기원료를 발견한 ‘이즈미야마 도석장’, 도자기 마을 아리타를 있게 만든 도공들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은 ‘선인도공의 비석’ 등 수백년 역사를 거슬러 오르는 시간이었다. 특히 최근 북한의 핵 위협 속에서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평화공원’ 방문은 우리 청소년들이 전쟁과 핵무기의 폐해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 이에 본보는 3박 4일간의 강행군을 펼친 우리역사 바로알기 사제동행 일본탐방 캠프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주

 
▲ 학생들이 가이드로부터 조선통신사 사절단이 머물며 객관으로 사용했다는 아카마 신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수백년 전 시작된 ‘한류’

지금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류. 수백년 전 이미 한류는 시작됐다(?).

당시 일본을 삼킨 한류의 주인공은 ‘조선통신사’, ‘조선의 도공’이었다. 일본인들은 이들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 숙소에 줄을 섰을 정도로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이렇게 전해진 우리의 문화가 현재 일본문화의 초석이 됐다.

탐방단은 선조들의 위대한 흔적을 돌아보기 위해 일본행 배에 올랐다.

“오늘 날씨가 안좋아서 배가 심하게 흔들립니다. 멀리약 미리 챙겨드세요.”

동행한 가이드가 출발 전부터 겁을 준다. 고행의 시작이다. 대한해협은 한반도와 큐슈 사이의 해협을 일컫는다. 조선해협에서부터 시작된 해협의 이름은 1950년 대한해협으로 명명됐다.

쓰시마와 규슈 사이를 ‘쓰시마 해협’이라고도 한다. 현해탄이란 쓰시마 해협 중에서도 극히 일부구간이다. 이러한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파도가 검푸르고 거칠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통신사들도 바로 이 뱃길을 이용했다.

부산항에서 멀어지니 이내 거친 파도가 우리를 맞는다. 수백년 전 조선통신사들이 건넜던 파도를 헤치고 일본으로 향했다.

 
▲ 학생들과 교사들이 가이드로부터 조선통신사 사절단이 머물며 객관으로 사용했다는 아카마 신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조선통신사의 흔적을 엿보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 일본을 천하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서 시작된 한국과 일본의 국교 회복 사절단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모한 조선침략을 비판하고 양국의 국교회복을 위한 우호적 교류를 도모했다. 이 통신사는 외교사절의 의미도 있었지만, 문화사절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탐방단은 시모노세키에 위치한 ‘조선통신사 상륙기념비’를 찾았다. 이곳은 말그대로 조선통신사들이 첫 발을 딛은 곳이다. 화려함은 없었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이었다. 특히 최근 조선통신사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첫 시발점이 된 이곳은 더욱 뜻깊었다

당시 이곳에 조선통신사들이 올때마다 임시 선착장을 만들고 일행이 떠난 후 철거했다고 한다.

조선은 1607년부터 1811년에 이르기까지 12회에 걸쳐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해 약 250년간 평화관계를 지속했다. 이들의 주 임무는 일본과의 강화와 그 조건 이행 확인, 내정 탐색, 조선인 포로·유민 송환 등이었다. 상사, 부사, 종사관 외에 저명한 학자, 문인, 화가, 의사 등 그 수가 무려 500여 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일본은 전 국민적인 축제 분위기 속에서 통신사를 맞았고 통신사 숙소에서 수행원으로부터 글이나 글씨를 받기 위해 몰려든 군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일본의 화가들은 통신사 일행의 활동을 대형 병풍, 판화, 두루마리 그림 등으로 그렸는데 수많은 작품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통신사가 준 사소한 선물을 귀중하게 간직하여 지금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 적지 않다. 통신사가 한 번 다녀오면 일본 내에 조선 붐이 일고, 일본의 유행이 바뀔 정도로 일본 문화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줬다고 했다. 그 환대가 중국 사신보다도 높았다고 하니 한류의 원조인 셈이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것도 잠시 학생들은 배의 닻 모양의 조선통신사 배 정박지를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분주하다.

 
▲ 당시 조선통신사 배가 정박했던 정박지를 배의 닻모양으로 표시하고 있다.
▲ 시모노세키에 위치한 ‘조선통신사 상륙기념비’.
▲ 시모노세키에 위치한 ‘조선통신사 상륙기념비’에서 바라본 앞 바다.
▲ 탐방단이 조선통신사 사절단이 머물며 객관으로 사용했다는 아카마 신궁으로 들어가고 있다.

광장 너머 길을 건너자 청일전쟁 이후 조선 침략의 발판으로 삼게 된 ‘시모노세키 조약’의 무대인 ‘청일강화기념관’이 나온다. 바로 옆에 위치한 곳이 조선통신사 사절단이 머물며 객관으로 사용했다는 아카마 신궁.

이곳은 8살 나이에 물에 뛰어들어 숨진 안타까운 사연의 안토쿠 태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신궁이다.

학생들은 처음으로 방문한 일본의 신궁이 신기한 듯 이곳 저곳을 돌아보고 서로의 느낌을 공유했다. 어떤 아이들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도 천정 위에 달려있는 종을 울리고 소원을 빌어보는 용기를 내기도 한다.

이곳은 우리에게 의미있는 공간이지만 선조들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광은 시원한 바람 어우려지며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수백년 전 선조들이 바라봤을 당시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 독일 츠빙거 궁전을 모델로 지어진 이곳 포세린파크에는 아리타의 유명 도자기들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도자기들이 전시돼 있다.
▲ 학생들은 큐슈도자문화관에서 규슈 도자기의 과거, 현재 모습은 물론 원료, 유약, 원리, 도자기의 다양성 등 모든 것을 눈으로 학습할 수 있다.
▲ 조선도공인 이삼평 선생이 도자기 원료를 발견했다는 이즈미야마 도석장.


◇조선도공이 만든 ‘아리타 도자’

우리 일행은 멀리서 바라보던 간몬교를 지나 규슈로 들어왔다. 일본 혼슈 섬과 규슈 섬 사이의 간몬 해협을 횡단하는 현수교이다. 두번째 한류의 주인공 조선도공의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건너온 도공들이 만든 자기가 모태가 돼 만들어진 도자기 마을이 아리타다. 조선 도공 이삼평이 가마를 개설함으로써 생산이 시작됐다.

당시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공이 155명에 이른다. 아리타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도자기술을 전수해준 조선의 도공 ‘이삼평’을 기리기 위해 신사를 세워 도자기신으로 모시고 있었다.

탐방단을 태운 버스는 어느 유럽식 궁전안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독일 츠빙거 궁전을 모델로 지어진 이곳 포세린파크에는 의아하게도 아리타의 유명 도자기들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도자기들이 전시돼 있었다. 하지만 조금은 생소한 디자인들이 많아 그 전시품만으로는 우리도자와의 연계성을 찾기는 힘들었다.

 
▲ 독일 츠빙거 궁전을 모델로 지어진 포세린파크.


더 자세히 배우기 위해 우리는 큐슈도자문화관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규슈 도자기의 과거, 현재 모습은 물론 원료, 유약, 원리, 도자기의 다양성 등 모든 것을 눈으로 학습할 수 있었다.

탐방단은 이삼평 선생이 도자기 원료를 발견했다는 이즈미야마 도석장에 들렀다. 그 옆에는 도자기 마을 아리타를 있게 만든 도공들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은 선인도공의 비석이 자리했다. 탐방단이 이곳에 내리자 우연하게도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함께한 교사가 “이삼평 선생이 우리가 온 것을 알고 반가워 눈물을 흘리신다”고 의미를 부여하자 괜시리 엄숙해진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 강제로 끌려와 당한 고초가 오죽했을까. 그럼에도 세계 도자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일본에서 조차 신으로 불리며 존경받고 있다.

학생들은 선조들의 위대한 의지를 마음에 새겼다. 뭉클한 마음을 달래며 이곳에서 사진을 남긴다.

강민중기자 jung@gnnews.co.kr

 
▲ 교사와 학생들이 도자기 마을 아리타를 있게 만든 도공들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아 만들어진 선인도공의 비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도자기 마을 아리타를 있게 만든 도공들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아 세워진 선인도공의 비. 도자 가마의 모양을 형상화해 눈길을 끈다.
▲ 시모노세키에 위치한 ‘조선통신사 상륙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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