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5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51)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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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51)

“추 여사님, 여기가 눈 익지 않으세요? 아줌마의 고향에 왔어요.”

한참만에야 축이 무너져있는 곳을 발견하여 물가로 내려서는데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그러나 양지는 얼른 눈물을 삼키고 아무렇잖은 듯 태연하게 자세를 바로 잡았다. 삽을 메고 논둑길을 걸어가던 남자가 아까부터 이상한 듯 뒤돌아보고는 했다.

“아줌마 여기가 낯익지 않아요? 여기 바위 밑 깊은 물에서 여름에 한 번쯤 멱을 감지는 않았어요? 하기야 눈칫밥 먹느라고 언제 그런 평화스러운 유년시절을 보낼 수나 있었겠어요.”

나지막한 산비탈 아래로 제법 거무스름한 색을 띄며 고여 있는 깊은 물가의 바위 옆에서 양지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래, 고향 있지. 도시든 시골이든 고향 없는 사람이 어딨어. 시골치고는 멋지고 출신도 괜찮았어.”

추 여사의 증발 후 말로만 들었던 추 여사의 고향을 홧김에 찾아갔었다고 강 사장은 그랬다. ‘가까운 친척도 없어. 엄마가 일제 때 공부를 많이 했는데, 신식 연애 때문에 옳은 가정도 못 가지고 자식을 낳았기 때문에 버림받은 눈치꾸러기였어. 전쟁 무렵에 중국으로 넘어 간 어미가 소식도 없으니 자식은 자연히 천애고아 신세가 안 되고 어쩌겠어. 그리저리 눈치로 커서 이게 결혼을 했는데 시집에서는 외로운 며느리를 감싸 주기는커녕 따돌리고 그랬나봐. 어쩌다가 딸 하나를 낳았는데 그것 키우는 재미로 살려는데 또 남편이 노름방에서 트잡이를 하다가 징역살이를 하고, 그렇게 되니까 재수 없는 며느리 때문에 집구석 망쪼가 들었다고 노골적인 구박이 심해졌나봐. 하는 수 없이 딸애를 업고 도망을 쳤는데 나랑 만났지. 본인 입으로는 그래도 부모가 일류 멋쟁이고 유식했다는 소리는 더러 했지만. 왕년에 금송아지 한 마리 안 키워 본 사람 있나 하고 웃고 말았는데 끝내 어린 딸도 죽고 저까지 이 지경으로 떠나게 됐네.’

“아줌마의 외로움 고독 같은 걸 이제야 조금 이해할 것 같아요. 용서해 주세요. 저 같이 매정하고 냉정한 애를 아줌마가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처음에는 성가시고 부담스럽기조차 했어요. 그러나 오늘은 아줌마의 딸이 된 심정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아줌마, 후생에는 제발 평범한 부모 만나서 행복하게 성장하여 외톨이로 살지 말고 사랑도 길이길이 누리도록 잘 태어나세요.”

눈물이 뜨겁게 볼을 타고 내렸지만 양지는 닦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새가 물가의 돌에 앉아 꼬리를 까닥거리다가 재빠르게 날아가는 게 보였다. 거품이 조금 떠있는 물의 표면을 내려다보던 양지는 주위를 한 번 다시 둘러보았다. 언제 물 섶에 서있는 나무나 풀들이 물의 흐름에 따라 쓰개인 힘든 모습을 이리 주의 깊게 바라 본적이 있었던가.

된통 겪었던 물난리의 흔적이 여기저기 드러나 있다. 몸통이 뒤틀린 갯버들, 가지가 찢어진 채 무너지는 흙속에다 가는 뿌리를 간신히 걸고 힘겨운 몸체를 지탱하고 있는 미루나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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