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키움 교실 활성화 사제동행 일본 탐방 2편
꿈키움 교실 활성화 사제동행 일본 탐방 2편
  • 강민중
  • 승인 2017.03.06 18: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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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교육청 주최·경남일보 주관
<하>원자폭탄 피폭지 나가사키
 
▲ 학생들이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전시실에 설치된 관련 영상 자료를 진지하게 보고 있다.


불편한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다짐하다
“나는 일본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중·소 4개국에 그 공동 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하도록 했다. 신민은 나의 뜻을 받들어라.”

1945년 8월15일 낮 12시 라디오를 통해 일본의 천황 히로히토가 떨리는 목소리로 항복을 선언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해방을 이뤘다. 일본의 항복은 몇일 전 두번의 원자폭탄이 터졌기에 가능했다. ‘우리 역사 바로알기 사제동행 일본탐방단’은 두번째 원자폭탄 피폭지인 나가사키을 찾았다. 그들에게는 비극의 장소지만 우리에게는 그토록 소망했던 독립을 가져다준 아이러니한 역사의 현장이다.

◇비참한 전쟁의 상흔

1945년 8월 9일 맑은 하늘 어느 때와 같이 평온한 하루였다. 벽에 걸린 시계는 11시 2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창문너머 하얀구름과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그렇게 점점 세상은 하얗게 변했다.

이날 나가사키 상공 500m 지점에서 패트맨으로 불리는 원자폭탄이 폭발했다. 진주만에 어뢰를 공급하던 미츠부시-우라카미 어뢰 제작공장이 파괴됐다.

폭발반경은 약 1~2㎞로 측정됐고 후에 화재가 북쪽에서 남쪽까지 3㎞ 퍼졌다. 폭발지점에는 순식간에 섭씨 3900도의 열이 달아올랐으며 후폭풍의 바람 속도는 1005㎞/h로 측정됐다. 이 폭발로 7만3884명이 즉사했고 7만490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나가사키 인구 24만명 중 절반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지금 원폭 낙하중심지 주변에는 나가사키 원폭자료관과 평화공원, 원폭사망자 추도평화기념관 등이 조성됐다.

탐방단은 우선 원폭의 피해의 참상을 확인할 수 있는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을 찾았다. 이곳을 찾은 일본인들과는 달리 가벼운 마음이었다. 냉정하게 본다면 전범국가에 상응하든 벌, 대가로 치부할 수도 있었다. 이로인해 우리가 광복을 맞은 것 아닌가. 곳곳에 평화를 상징하는 종이학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 한 학생이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전시실에 설치된 당시 피해 현장 사진과 유품을 바라보고 있다.
▲ 학생들이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전시실에 설치된 당시 피해 현장 사진과 유품을 바라보고 있다.



전시관 입구에 원폭 폭발 당시 미군이 촬영한 흑백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점점 피해 영상과 사진, 유품, 피폭피해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학생들의 얼굴은 굳어졌다.

사진속 건물들은 완전히 소실됐고 로드롤러에 깔려 부서진듯한 건물 잔해 속에 검게 탄 시체들이 나뒹굴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도 몸과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남았다.현재도 많은 피폭자들이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는 피폭 자료와 피폭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 등과 원폭이 투하된 경위와 핵무기 개발의 역사, 평화 등 스토리있게 구성돼 전시되고 있었다.

폭풍으로 파손된 벽시계는 영원히 11시 2분을 가르켰다. 철모 내부에는 피폭자의 두개골 일부가 달라 붙었다. 고열로 인해 붙어버린 사람의 손뼈와 유리와 녹아버린 6개의 병 등 어느하나 흘려 볼 수 없다.

특히 나가사키에 투하된 플루토늄 원자폭탄 ‘패트맨’과 똑같은 크기의 모형을 제작해 전시하고 있다. 길이 3.25m, 직경 1.52m 무게 4.5t의 쇳덩이였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이 쇳덩이가 이곳에 가져다 준 상흔은 거대했다.

천장 모니터에 의해 나가사키 모형위로 화구, 열선, 폭풍, 화재, 방사선이 평면적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모습을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기도 했다.

곳 곳에 설치된 아이들의 조각과 피해사진들. 이 아이들의 시간 역시 영원히 11시 2분에 멈춰있다.

 

▲ 나가사키 평화의 공원에 설치된 ‘평화의 기념탑’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인 피해도 2만명


“목이 말라서 참을 수가 없었다. 물에는 기름 같은게 떠 있었다. 물이 너무 필요해 기름이 떠있는 물을 그냥 마셔버렸다.”-원자폭탄이 떨어진 후 소녀의 편지

인근에 위치한 원폭 투하지에는 탑이 조성돼 정확한 지점을 알리고 있다. 원폭투하지를 돌아 ‘평화의 공원’ 입구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니 ‘평화의 샘’이라 불리는 분수가 나왔다.

“주변에 물을 이용한 조형물이 많네요.” 한 교사의 질문에 가이드가 “당시 고열로 인한 피해자들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평화의 샘 너머로 9.7m의 높이의 건장한 남신상인 ‘평화의 기념상’이 위용을 드러냈다. 이 동상은 온 몸으로 당시의 무서움과 고통, 다짐을 미래세대에 전하고 있다. 오른팔은 원폭이 떨어지는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수평으로 뻗어 평화를 기원한다. 눈을 감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이날따라 동상에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들이 내려 앉아 의미를 더했다.

탐방단은 이곳에서 시간을 조금 더 할애했다. 평화를 위한 노력과 다짐은 모두가 가져야할 숙제이기도 하지만 현재 직면한 한반도의 북핵 현실과 맞다아 있어 경각심을 갖자는 의미였다.

한 학생은 “전쟁의 무서움을 느꼈다”고 이곳에서의 소감을 전했다. 또 동행한 교사는 “일본은 이런 곳을 조성해 당시의 과오를 범하지 말자고 다짐은 하면서 정작 과거사에 대한 직접적인 반성과 사과는 하지 않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 나가사키 원자폭탄 폭발시 고열로 녹아버린 로사리오 묵주
▲ 원폭자료관 전시장 천장 모니터에 의해 나가사키 모형위로 화구, 열선, 폭풍, 화재, 방사선이 평면적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 이곳에서 우리는 원자폭탄에 대한 경각심만 생각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평화의 공원은 전쟁과 원자폭탄의 무서움과 자국 피해자들의 위로, 평화의 다짐만 존재할 뿐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보이지 않았다.

인근에 초라하게 세워진 한국인 피해자 추모비를 찾았다. 피폭된 한국인 2만여명, 이중 1만명은 즉사했다. 피해 외국인 중 가장 많은 숫자다.

이들은 도로, 방공호, 제강소, 군수공장 등 토목공사장에서 강제노동을 당하고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 추모비 역시 일본정부가 세워준 것은 아닌 듯 했다. 먹먹함이 다가왔다. 학생들은 자기가 들고 있던 물병을 하나둘 비석에 놓고 고개숙여 애도했다.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 사라져간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자….

 

▲ 나가사키에 투하된 플루토늄 원자폭탄 ‘패트맨’과 똑같은 크기의 모형을 학생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 원폭자료관 전시실 내부


◇꿈을 찾는 역사여행

탐방단은 타케오 신사 뒷편에 위치한 3000년된 녹나무에서 기운을 받아 일본 학문의 신을 모시는 다자이후 텐만구와 후쿠오카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 동장사에 들러 학업성취를 기원했다. 하카타 포트 타워에서는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학생들은 미래의 꿈을 키웠다.

탐방에 참가한 함양의 A학생은 “현장에 직접와서 보니 책으로 배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일본의 도자기의 발전의 기원이 우리 조상들의 손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듣고 뿌듯했다”며 “지금의 한류문화가 수백년전 이미 일본에서 시작됐었다는 점이 흥미로왔다. 역사 공부가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탐방의 소감을 전했다.

 

▲ 나가사키 원폭 폭발로 희생된 조선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추모비 앞에서 학생들이 고개 숙여 고인들을 애도하고 있다.
▲ 나가사키 원폭 투하지점을 비석을 세워 표시하고 있다.



또 양산의 B학생은 “나가사키 핵폭발로 한국인의 피해가 특히 많았다는데 그에 비해 비석이 초라해 가슴이 많이 아팠다”며 “솔직히 북한의 핵이나,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듣지만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서 본 사진과 영상은 정말 무서웠다. 이제는 그런 뉴스나 이야기들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탐방단의 단장을 맡은 학생생활과 최장호 장학관은 “이번 일본탐방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역사 현장을 방문하며 우리 문화의 위대함을 배우는 동시에 아픈 역사와 마주하기도 했다. 현장을 직접 보면서 느낀 감동이 역사에 더욱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와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넓은 세계를 경험하면서 자신감과 꿈을 키우는 시간, 한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강민중기자 jung@gnnews.co.kr


<일본탐방2편>경남도교육청 주최·본보 주관 …‘꿈키움 교실 활성화’ 사제동행 일본 탐방

▲ 3000년된 녹나무에서 학생들은 학업성취를 기원했다.
▲ 학생들이 일본 신사에서 가이드로부터 예절을 배우고 있다.
 
▲ 고열로 녹아서 붙어버린 병
▲ 한 학생이 하카타 포트타워에서 휴대전화로 사진을 남기고 있다.
▲ 고열로 인한 피해자들의 목마름, 고통을 위로하고자 만들어진 평화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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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희 2017-03-10 11:22:41
생생한 역사공부~. 아이들에게 동기부여의 기회가 되었을것이라는 기분좋은 생각을 했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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