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5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54)
  • 김지원
  • 승인 2017.03.1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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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54)

21

강 사장이 남겨놓고 간 돈으로 추 여사의 사십 구 제 비용을 절에 넣고 내려 온 양지는 고급 담배 두 보루를 사고 두 몫으로 쇠고기도 몇 근을 사서 들었다. 추 여사를 재워주었고 차마 눈뜨고 못 볼 일을 겪은 정자어멈과 동네 사람들에게 사례할 것들이었다.

빈집에 바람만 가득할 뿐 정자어머니는 집에 없었다. 일없는 노파들이 어제는 저 집 오늘은 이 집으로 돌아가며 모여서 논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양지는 서슴없이 바자울이 비스듬히 서있는 몇 집 건너 이웃으로 갔다. 그날 정자어머니와 같이 어른스러운 간여를 하던 노파의 집이었다. 젊었을 때 더러 보았을 듯 한 낯익은 모습이었지만 경황 중에 따져서 인사를 할 형편도 아니라 그냥 넘겼지만 누구라고 하면 알만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예상대로 노파의 집 댓돌에는 각양각색인 여러 켤레의 신발이 오밀조밀 놓여 있었다. 아울러서 늙은 여인네들의 시끌짝한 목소리가 한데 어울려서 문밖으로 새어나왔다.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이 도담도담 모여 앉아서 우스갯소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양지는 어머니도 저렇게 만만하고 평화스러운 날이 있었을까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오히려 ‘나만 혼자 너무 불쌍하기 보지마라. 문 열고 안으로 들어가보모 걱정 하나 없이 사는 집 없다’하며 힘주어서 양지를 안위시키고는 했다.

양지는 부러운 마음으로 잠시 그 방안의 분위기를 그려 보다 목젖을 적신 공손한 목소리를 지었다.



“정자어머이 여기 계십니꺼?”



두어 번 더 같은 물음을 던져놓고 서 있으려니 안에서 누가 왔는갑다,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신호로 하회탈 같이 주름진 얼굴들이 열린 방문 밖으로 드러났다. 이불 밑에 옹기종기 발을 넣고 둘러앉아 있던 노친네 하나가 무릎걸음으로 기어 나와 목을 내밀었다. 양지는 엊그제의 노친네를 찾았다. 눈길이 마주친 노파가 반색을 하며 마루로 나섰다.

“아이구 웬 일인고, 그란 해도 그 이바기하고 있었건마는. 그래 일은 잘 쳤남?”

“예, 염려해주신 덕분에요. 심려를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했습니더.”

양지는 여러 사람들 앞에 얼굴이 환히 드러나지 않도록 일부러 고개를 반쯤 숙인 채 말했다. 얼핏 보니 어머니와 같은 연배로 오가던 아주머니들의 면면도 읽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가 치러야 했던 그 남우세스러운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니 더더욱 얼굴을 바로 들기가 민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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