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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3·15 부정선거'
박은정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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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4  21: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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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개표 완전 종료
이박사 9,633,376표·이기붕씨 8,337,059표
장면박사 184만·김씨 24만·임씨 9만표


3·15 정부통령선거는 전남 무안 개표구의 개표를 끝으로 전국 187개 개표구의 개표가 완전히 끝나 대통령에 이승만박사가 11,196,490명의 유권자 중에서 총 9,633,376표를 얻음으로써 제4대 대통령에 당선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부통령에는 이기붕씨가 8,337,059표를 얻어 당선이 확정되었으며 민주당의 장면씨는 184만3758표를 얻었고 김준연씨는 24만9915표, 임영신씨는 9만7533표를 각각 얻었을 뿐이다.

17일 상오 중앙선거위원회에서 집계한 대통령부통령 입후보별 특표수를 도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하략)

1960년 3월18일 1면 톱기사 제목과 내용이다.

58년 前 3월과 2017년 3월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이기붕을 정·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한편 야당인 민주당은 조병옥과 장면을 정·부통령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조병옥은 선거 실시 전에 미국에서 병사하였기 때문에 4선을 노리는 이승만의 대통령 경쟁자는 없어졌다.

 그러나 당시 85세였던 이승만이 노령이었기 때문에 재임 중에 병사하면 이를 승계할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자유당 정권은 집중적이고, 조직적인 부정 선거(‘4할 사전 투표’, ‘3인조, 9인조 공개 투표’, ‘자유당 후보 득표율 85% 이상 확보’ 등)를 자행했다.

 당시 민심은 자유당 정권의 부정과 부패 때문에 크게 이반되었는데, 자유당 정권은 경찰과 공무원을 동원하여 3·15 부정 선거를 획책했다.

3월 15일 오전 10시 30분 민주당 마산지부는 오동동 당사 앞에서 자유당의 부정 부패와 중상 모략선거로 인한 선거무효를 선언하자 분노한 시민들의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됐다.

 경찰들의 무차별 진압으로 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28일 동안 실종되었던 김주열군의 시체가 4월11일 마산 중앙부두에서 떠오르자 이에 분노한 마산시민의 2차 시위와 함께 전 국민의 분노가 확산되어 4.19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태를 수습하려했으나, 학생들과 시민들은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급기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드디어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 자유당의 12년 장기집권도 막을 내리고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늘 정의와 진실에 굶주렸고 또 원칙과 순리를 따르려 애썼다.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늘 몸부림쳤다. 이러한 결과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이루는 원천이 됐다.

 2017년 3월, 미래의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는 봄이기를….

박은정 편집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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