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59)
허리에 박히는 강한 타박감이 동시에 파고들었지만 벗어날 힘까지 그쪽으로 같이 쏟아져버렸다. 쓰러진 자리는 생각보다 안락하고 부드러웠다. 그녀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희미한 생각도 띄워 보낸 채 제 느낌의 분위기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잠시 그러고 있는 동안 통증에 짓눌린 몸과 함께 그녀는 어디론가 안개가 짙은 지역을 해면체 같은 부드러움과 편안함에 실려 가고 있었다. 등 뒤에서는 호남이와 아버지, 고종오빠가 부르며 따라오고 있었지만 그녀는 결코 지금의 이 몸을 잦뜨리는 듯 한 희열을 버리고 그들에게로 돌아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오라는 곳은 없었다. 그러나 어디든 가야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지속적인 효율을 창출해 내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그녀의 내면은 애면글면 허하게 팽배해지고 있었던 터였다.
“인자 정신이 좀 드는가 베?”
눈을 떠보니 뜻밖에도 호남의 얼굴이 천장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돌린 시야로 또 하얀 벽이 내려왔다. 금속성 기구들이 부딪치고 아픔을 호소하는 외침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여기가 어딘가. 몸을 일으키려니 어어 안 돼, 하며 호남이 어깨를 누른다.
양지는 자신도 몰래 아, 하는 신음을 토했다. 고무질처럼 질긴 ㅤㅌㅡㅇ증이 몸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다시 공격을 가해 왔다. 팔에는 긴 줄과 주사바늘이 연결되어 있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환자의 몰골이다.
“언니야, 나는 이대로 니가 죽는 줄 알았다.”
호남은 양지의 얼굴을 끌어안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놓았다.
“내가 와 여기 와 있노?”
“동네에서 얼마 안와서 그랬기 망정이제 낯선 곳에서 그랬시모 꼼짝없이 죽었지 뭐꼬. 마침 기철이가 측량하는데 갖다오다가 찻길 옆에 언니가 쓰러져 있는 걸 봤다 안 카나.”
그래, 정자어멈과 정자와의 불화설을 듣고 상심하면서 걷던 중이었다. 대책 없이 집합해 있던 산송장들의 현장을 목격한 마음앓이거니 가슴속의 복통쯤은 예사로 여겼었다.
“봐라 몸은 꼬쟁이 겉이 말라갖고 묵는 건 잘 안 묵고 그란 깨 그런 병이 걸리제.”
“병?”
“니 깨나기 전에 엑스레이도 찍었고 내시경도 했다. 입에 피가 말라붙어 있는걸 보니 겁이 나서 덜컥 가슴이 내리앉는데 우찌 그냥 둘 끼고. 위궤양이 심하몬 그런 일도 있다카더만 결과 나오는 대로 곧 알카주기로 했다.”
양지는 멍한 상태로 호남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죽은 시체처럼 의식 없이 당했던 자신의 육체에 따른 사태였다. 새삼스럽게 돌아보니 여기저기 병상이 가득 차 있는 실내에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환자가족들에 섞여서 환자를 돌보느라 바쁘게 돌아간다.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