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6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62)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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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62)

“고정하십시오. 저기 있는 동생도 그렇고 저도 그런 말 했습니다만, 저라도 알았다면 어찌 막아볼 수도 있었을 거지만 죄송하단 말밖에 드릴게 없습니더. 외숙님한테는 참말 죄송합니더.”

“죄송? 자네가 그 물건을 꿰차고 댕기는 것도 아닌데 뭔 그런 소리는 하노. 그 년이 간뗑이가 크기는 쇠덕석이라, 그런 일 치르고도 내품없이 지 셍이 옆에서 간호한다꼬 알짱기리?”

분노를 삭이지 못해 들썩거리는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운다. 고스란히 수용할 수밖에 없는, 갈 데까지 가버린 일이라는 생각인양 오빠는 아무 말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정적이 갑자기 커져서 함초롬한 무게로 내려앉는다. 그 사이로 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가래침을 긁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복도 저쪽으로 멀어졌다. 뒤따라 오빠도 나가는 기척이 들렸다. 양지는 경직된 몸을 풀고 모로 돌려 누우며 억제했던 호흡의 끈을 풀었다.

호남이 기어코 이혼을 했다. 인지를 목적으로 되새겨서 떠올려 보았으나 실감나지 않기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아버지가 알게 되었고 오빠는 기정사실을 못질하고 있다. 그런 큰일을 치른 기색도 감쪽같이 숨기고 추 여사의 장례를 도운 호남의 배포를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도량이 넓다고 해야 할지.

요즘 세상에서 이혼이란 노선버스를 갈아타는 정도의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아니, 재수가 좋다면 산 좋고 물 좋은 곳에다 새로운 정자를 지을 수 있는 기대도 희망도 없지 않다.

그런데 양지 자신도 독신을 주장해 왔던 입장이건만 동생 호남의 경우는 소중하게 키워오던 무언가를 파기 당해 버린 듯 한 허망함이 생각할수록 아쉽고 써늘하게 다가왔다.

참으로 간 큰 여자다. 그렇게 능청스럽고 태연할 수 있다니. 젊은 부부들의 이혼사례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던 보도기사는 남의 일만이 아니었다. 호남의 성격상 전혀 예상 못했던 일도 아니었고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엄습하는 낭패감은 떨쳐지지 않았다. 성격상 굳이 상의는 못하더라도 한 마디 말을 흘리기라도 했다면 이런 쉬운 결말에 이르게 방치하지는 않았을 겨였다. 끝내는 일은 순간이지만 지속시키는 일은 정말 담즙을 입에 담고 참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혼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여자가 쉽게 수용할 결단은 아니다. 발전적인 일은 더더욱 아니며 멍들고 망가지는 창피스러운 과정의 연속일 수도 있다. 아직도 사안시 되는 이혼녀의 굴레를 쓰고 성공한 여성은 드물다. 더구나 결손 가정의 함정으로 자식이 빠지거나 심정적으로 바로 서지 못하면 이 대 삼 대 불행의 파장이 이어지는 것도 빤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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