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6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63)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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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63)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이혼이 무슨 흠이냐고도 한다. 하지만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을 저보다 남의 행실을 비방할 때 잘 쓰는 사람들의 인심에서 이혼녀의 입지가 평등하고 호의적일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직업 종교인이 아닌 이상 독신자에 대한 인식도 불구자 이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며 사별 이외의 어떤 헤어짐도 천리를 파기한 배반적 행위로만 인정되는 이 고풍스러운 지역에서 호남이 받아야할 불이익은 상상외로 클 것이다.

호남의 용맹성을 부추긴 것은 들불처럼 번져 온 사회적인 여파도 있다. 그러나 사회가 그런다고 따라서 날뛰는 것은 자신에 대한 무책임과 신중하지 못한 처신에 있다. 자신의 능력을 모른 채 단지 불평등 불이익에 대한 봉기만으로 세상의 모든 여건을 적대시하고 공격적으로 대처 해온 것은, 젊은 여자들의 일천한 인생경험에서 기인된 오류라는 것을 양지는 요즘 들어 깊이 깨닫는다.

깨뜨리는 것보다는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보전하는 쪽이 훨씬 유리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어머니는 삶의 선각자들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담담하게 여인이란, 어머니란 한 가정의 보이지 않는 ‘중심’ 이나 ‘주초’라는 자리를 지킨다. 부모 자식도 아닌 남남, 그것도 성별이 다른 남녀가 이십 년이 넘게 제 맘대로 성장하다가 한데 합쳤는데 무리 없이 쉽게 화합할 것이라고 믿는 자체가 억지 아니겠는가. 물론 성격 차이네 뭐네 구실을 붙이는 다른 부부들과는 다른 이유로 호남이네는 헤어졌다.

‘나, 영어 수학은 까막눈이지만 사는 거 하나만은 박사 소리 들어도 안 부끄럽것네. 내 입안에 든 쎄(혀)도 물릴 때가 있는 데 남남이 만난 부부가 싸울 때가 와 없겄노. 니 탓 내 탓하지 말고 깨진 것 붙이고 엎질러진 것 씰어담는 것 그게 사는 거 아이가’

나이 많은 여인들은 그랬다. 젊은 기개가 개조할 것은 삶의 질일 뿐이지 면면히 지속되어온 줄기는 아니건만 수많은 젊은 여성들은 개구리 뜀뛰기의 환상으로 아까운 세월을 허비한다고도 했다.

양지는 코 막힌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호남아. 주영이, 주영이는 어떻게 할래.’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 호남의 행방에 대해 양지는 목이 말랐다. 무엇이든 속 시원히 본인의 입으로 시말을 확인하고 싶었다.



호남이 나타난 것은 아버지와 고종오빠가 아직도 안 깨났는가 베, 이리 혼절한 거 본께 원기가 떨어져도 이만저만 떨어진 게 아녔네, 하며 다시 들어와 양지의 병상 옆에서 머뭇거리다 가고 난 한 참 뒤였다.

화장실에 다녀 온 양지는 병실로 들어가지 않고 복도의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보이지 않는 앞날에 대한 암담함은 오늘도 지리멸렬함 속에다 그녀를 가두어놓고 어떤 생기도 부추겨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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