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6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65)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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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65)

“그랬는데 오늘은 우쨌는지 아나? 명자언니 엄마는 울고불고 포클레인 앞에 드러눕고 난리가 나고 측량 기사들은 그 집 사람들을 내쫓고 그런 쇼가 없더란다. 딸자식 덕에 살판 난 주제에 정지 가스나 기생 된 거 맹키로 까분따꼬 명자엄마 안 좋아하는 사람들 몇 명 있었거든. 그 야단법석을 보면서 사람들이 엄마랑 우리 얘기 많이들 했나보더라. 아이 고소해. 언니는 내가 와 이리 좋아하는지, 이유가 뭔지 짐작 안가나?”

“…?”

“살짝, 니만 알고 있거라.”

아끼는 사탕을 차마 입에 넣지 못하는 듯 호남은 아주 뜸을 들였다. 한쪽 눈을 찡긋하며 히히거리는 것이 어린애처럼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러다가 그녀는 아주 큰 비밀을 털어놓듯 은밀하게 낮춘 음성으로 또 재빨리 뱉어냈다.

“그리로 도로가 뚫린단다.”

“거기?”

양지는 호남이가 저렇게 좋아하는 것과 관계있는 장소를 여러 곳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짚어보았다.

“어디긴 어디라, 우리 집 터 말이지. 아우 얼매나 고소하고 통쾌한지 춤이라도 추고 싶은 걸 참느라꼬 혼났다. 약빠른 굉이가 밤눈이 어둡다카더마 그 사람들은 와 그걸 몰랐을꼬. 하기사 국가에서 선 좍좍 긋고 하는 사업인데 지 까짓게 또 우짜것노. 아이고 꼬시라, 깨소금 맛이 입에서 폴폴 난다.”

순간 양지는 호흡을 멈추었다. 몸통 한 가운데를 비집고 날카로운 전류가 밀려갔다. 어딘가 한 곳을 뭉텅 잘린 것 같은 공허함에 맞닥뜨렸다. 그 속에는 어쩌면 통쾌한 것 같았고 비린 슬픔 같은 감정도 깔려 있다. 누구에게서나 성공은 절체절명의 또 다른 보상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아무나 성공이라는 찬란한 단어를 길래 향유하기 어렵다. 요즘 들어 양지는 대놓고 명자네가 부러웠다. 똑 같은 대평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한때는 약간의 대리만족도 없지 않았다. 대평의 가난한 딸들이 일으킨 성공의 변수를 남자들이 얕보지 못할 것에 은근히 힘도 얻었던 터였다. 난 데 없는 돌개바람의 소용돌이에 개인의 일이란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뭉개질 수밖에 없는가. 진양호 담수가 시작되자 차오르는 물의 높이에 부웅 떠서 제 각각으로 흘러 간 실향민들의 경우도 그랬다. 인생에 영원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권토중래로 들떠있던 명자네의 기분은 어떨까.

호남이 빠끔 들여다보며 볼멘소리를 했다.

“언니 니가 엄청 좋아할 줄 알았는데 별일이다. 우리가 도로공사한테 시킨 일도 아인데 와 그런 얼굴을 하노?”

모르겠다 모르겠어. 양지는 벽에 기대앉은 채 눈을 감았다. 오감을 안으로 가둔 어두운 마음속으로 병원 밖 길에서 들려오는 차들의 소음이 결을 이룬 흐름으로 밀려가고 밀려왔다. 아울러서 엇길처럼 뻗어있는 호남의 일까지 길게 길게 양지의 시름을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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