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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17)<177>탄생 100년을 맞는 시조시인 아천 최재호(5)
김귀현  |  k2@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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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30  22: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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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호 시조시인은 한학에 깊이 들어가 있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 고성 학동에서 서당을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교류하는 인사들 중에 한학자들이 많았고, 산청의 중재 김황선생과 관련되는 일에 참가한 것으로 보아 그렇다. 그리고 그는 창작 시조집 외에 번역시집 ‘하정시집’, 유작집 ‘아천번역문집’을 갖고 있어서 한문세대와 한글세대의 중간 지대에서 한껏 양면의 장점들을 살려가며 살 수 있었다.

‘아천문집’을 보면 한문 문장으로 쓰여진 각종 장르의 글들을 번역해 싣고 있다. 물론 그 글들 속에는 한글로 된 문장들도 함께 싣고 있지만 대부분의 글들은 한문 장르에 속한 글이다. ‘기문記文’ ‘제문祭文’, ‘비갈碑碣’, ‘행장行狀’, ‘한시漢詩’, ‘묘비명墓碑銘’, ‘만사輓詞’ 등의 다양한 한문 문장이 실려 있다. 현대시인들이 볼 때는 기이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근대문학사에서 한문문학과 한글문학이 혼류하는 세대의 문인으로는 최남선, 양주동, 이병기, 이은상 등과 1930년대 이후로는 이육사, 이원조, 이원섭, 김어수, 조종현 등을 들 수 있고 현대에 와서는 김종길, 정완영 등을 꼽을 수 있다. 김종길 교수는 지금도 수유리에서 옛날 이육사의 수유리 언저리 시회를 기념하여 이우성 교수 등과 월요시회를 열어 한시를 선보인다고 한다.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양쪽에 관여할 때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는 것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도 아천은 한학의 기품을 보여주면서 일상에서는 생의 풍격을 풍기는 거의 유일한 시인이었다. 말하자면 아천은 먹물이 묻어 있는 시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경남에서는 거의 동세대로 설창수 시인과 박노석, 정진업이 있고 10년 연상으로 이주홍, 이경순 시인이 있었는데 설창수 시인은 한문세대는 아니다. 한문은 족자를 써서 이웃에 돌리기는 했지만 일상의 인상으로는 아취는 있으되 시상까지 한문형에 침윤이 되지 않았다. 이주홍은 아천처럼 한문학적 교양이 잡혀 있어서 서예에도 문인 글씨로는 명필순에 들었다.

아천은 한문학 교양과 한글세대 교양이 평형을 이루는 편이었다. 고전에 관한 지식과 교양을 습득했으면서도 고루하지 않았고 현대의 신시조를 썼으면서도 비교적 비현실적인 언어를 쓰지 않았다. 필자는 ‘흐름의 순리와 가족 윤리’라는 아천의 시조론을 썼는데 그 시작 부분은 다음과 같다. “아천의 시조는 우리 주변에서 퇴색해 가는 전통 서정을 환기시켜 주고 있다. 제목에서 이 점 분명해진다. ‘待春賦’, ‘初春’, ‘洛花詞’ 등이 주는 분위기는 한시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한시의 그 자연친화의 서정적 발상이 제목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여기에 하나로 어울리는 것으로 옜말, 토속어 등이 있어서 전통 서정을 보다 진하게 드러낸다. ‘모란’이라는 작품을 보자. ‘화사한 그날다히/ 우로도 기름진 뜨락// 툭 툭 무너져 앉는 / 부귀인가 영화런가/ 어즈버 어제이런 듯/ 눈물 마른 하늘이여’ ‘그날다히’나 ‘어즈버’ 같은 말이 고전과 현대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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