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압(踏壓)
조세윤((사)경남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답압(踏壓)
조세윤((사)경남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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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윤
농경지가 얼어서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씨앗을 뿌린 후 토양을 밟아 주는 일을 ‘답압(踏壓)’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방과 후에 학교에서 동원하여 온 보리밭을 자근자근 밟으며 동무들과 즐거워했던 일들이 새롭다. 보리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보리가 들뜨지 않고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아이들이 손을 잡고 한 줄로 늘어서서 보리밭을 자근자근 밟았다.

우리 지역에 한국의 명승 제15호로 지정된 가천 다랭이마을이 있다. 이곳의 명물 가천암수미륵바위 근처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돈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사람들이 몰려와 암수바위에 아들딸 낳게 해달라며 소원을 빌 때 그 돈나무 그늘 아래 모여서서 기도를 드린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돈나무가 고사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나무 주변의 토양들이 사람들에게 밟혀서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토양의 미생물들이 활동을 못하게 된 것이다. 식물학자 오병훈 선생께서 남해에 봄 야생화 촬영차 오셨다가 그 현장을 보고 한탄하며 빨리 주변에 펜스를 쳐서 보호하지 않으면 수년 내 고사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나무는 지상의 모든 생명을 키우는 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한 그루의 나무는 광합성을 통해서 탄수화물을 합성하여 동물을 키운다. 지구에서 생산자는 오직 녹색식물밖에 없다. 녹색식물만이 산소를 생산하여 우리가 호흡할 수 있도록 하고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나무에 의존해서 삶을 영위해 왔다. 나무가 주는 산소를 마시고, 나무가 만드는 과일을 먹고, 나무에서 얻은 섬유로 옷을 입으며 집을 짓고 산다. 그러다 죽으면 나무로 만든 관속에서 영면한다. 숲은 우리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고, 꽃은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한다. 나무는 그야말로 지구의 생명을 살리는 최초의 어머니이다.

가천 다랭이마을의 암수미륵바위에 소원을 빌고 있는 저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잎으로 만든 그늘을 제공하고 자신은 그 무게에 눌려 고사하고 있다. 오래된 나무는 환경에 적응하는 힘이 그만큼 강해서 특별한 유전자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저렇게 큰 돈나무에도 그런 유전자가 있을 수 있으니 잘 보호하라는 노 식물학자의 말씀이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조세윤((사)경남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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