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6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69)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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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69)

“너 그럼 주영이 앞날은 생각해 봤나?”

호남은 얼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재빠른 말로 양지는 이어 붙였다.

“그 앤 누가 기를 건데?”

아금받게 매듭짓지 못한 것을 시인하는 모양 호남의 고개가 수그려졌다. 헐렁하고 느슨하기 이를 데 없는 성격대로다. 정말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자각도 없이 불끈 치솟는 성질대로 그 중요한 일을 처결한 것이다. 제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 채 위탁모의 손에서 놀고 있을 정남의 딸이 떠오르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양지의 목청을 돋웠다.

“어미가 죽은 것도 아니면서, 자식을 고아로 만들기가? 바람막이도 없는 공간에서 주영이가 어떻게 에돌지 생각이나 해봤어? 그건 천하에 인정머리 없는 우리 아부지 옴마도 피했던 짓이다.”

“그럼 나더러 우짜란 말이고. 지끔 데리고 와서 우찌 키우라꼬. 니 말마따나 학벌이 있나 배운 기술이 있나 농사짓는 것 빼끼 안 해본 내가 뭘 해묵고 살 끼고. 대체 언니 니가 세상을 얼매나 아노.”

“유아원에 보내던 애니 유아원에 보내도 되고 또 한 일 년 있다가 학교에 보내면 되지.”

호남은 기막히다는 듯 피식 웃어버렸다.

“결손 가정, 뭐 그런 소리 하더니 그새 망령 났어? 아무 것도 없이 자식만 끌어안고 있음 돼? 누가 밥 공짜로 멕여주고 재워 주냐고. 도대체 뭘 모리는 사람은 내가 아니고 언니다. 요새는 자식도 제가 원하는 거 척척 해줘야 부모 좋아하지 언니나 내 어릴 때 같은 줄 아나?”

“아유 답답. 어릴 때 입은 마음의 상처는 겉을 아무리 장식해도 치유되지 않는 거니까 그러잖아.”

“결혼해서 아아도 안 낳아 본 언니는 몰라. 주영이는 지금 데려 올 때가 아니고 돈 좀 벌어놓고 데려와도 안 늦다.”

호남은 보호 양육이 필요한 어린 싹으로 주영을 보지 않고 제 삶을 힘들게 하는 혹 정도로 알고 있는가.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해도 모성만은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인데, 짐승보다 못한 에미가 돼서는 안 되는데…. 딱 잘라서 제 주장만 내세우는 호남의 태도에 질려 양지는 더 입씨름할 힘을 잃었다.



양지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어떤 글이 있었다. 정남을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있을 무렵에 접한 내용이라 그 글에 대한 내용은 더욱 아픈 감동을 주었는데 조선조 어떤 야사에 있던 내용을 인용한 글이었다.

청나라에 간 사신 중에 역관 한 사람이 원숭이를 무척 좋아했다. 귀국에 즈음하여 만삭이 된 원숭이 한 마리를 구하게 되었다. 신주처럼 소중하게 산해관까지 데리고 와서 며칠 묵는 동안 새끼를 분만했다. 너무 귀여워서 원숭이 모자를 역참의 마당에 내놓고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솔개가 나타나서 새끼를 채가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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