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0)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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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0)

너무나 찰나여서 아무도 손을 쓰지 못했다. 새끼를 잃고 밤새 미친 듯 한 발작을 하던 어미가 새벽녘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다음 날 어미 원숭이는 암탉의 양 날개를 입에 물고 닭과 같은 모양으로 역참 마당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공중에 날던 솔개가 닭인 줄 알고 쏜살같이 원숭이를 덮쳤는데 솔개는 원숭이의 이빨에 물려 죽고 원숭이는 솔개의 발톱에 찔려 죽었다.

양지의 겹쌓인 기억 속에는 또 이런 내용도 있다. 남쪽 나라 어느 열대림 속 동물의 생태를 보여주는 텔레비전에서다. 어미 원숭이가 사색이 짙은 새끼 원숭이를 안고 며칠간을 이리저리 헤매던 중 새끼원숭이는 죽고 말았다. 양발로 이리 젖혀보고 저리 젖혀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어미 원숭이는 일순간 실망에 쌓였다. 이윽고 무언가 생각하더니 죽은 새끼를 품에 안고 보금자리를 옮겨 다녔다. 더운 지방이라 죽은 새끼가 부패하는 데도 이동할 때마다 새끼를 안고 다녔다. 며칠이 지나자 살과 가죽은 완전히 없어지고 뼈만 한 무더기 남게 되었다. 그래도 어미는 뼈가 하나 둘 흩어지고 큰 뼈 한 대만 남게 되었어도 버리지 않고 숲속 어딘가로 뼈를 안고 사라져 가는 것이었다.



양지는 그때 잠시, 도망 가버릴 수도 있는 악조건인데도 고집스레 가정을 지키고 있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가 간직하고 있었던 모성, 그것은 세상이 아무리 삭막하게 변질되어가도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인간성과 가족을 보호하는 굳건한 요소이다. 그리고 그 감동은 또 정남의 아이를 외국으로 입양 보내면 안 된다는 양지의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물론 호남이와 같은 처지가 되어보지 않아서 장담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미 된 입장이라면 어미의 자존심을 걸고 여성성과 동일한 모성만은 어떻게든 지켜내야 한다는 결론이 양지의 신조였다.

물정 모르는 언니가 답답한 듯이 양지를 째려보고 있던 호남은 열이 오른 얼굴을 쓸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떻게든 주영이는 네가 길러야 돼. 양지는 확답을 받아내고 싶어 안달하는 마음을 가까스로 제어했다. 좀 피곤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이론에 불과한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호남을 자극해서는 오히려 역효과만 나고 말 것이다. 설득의 좋은 기회를 다시 만들기로 생각을 고쳤다.

살아 온 세월의 역량만큼 호남이 쌓아 온 삶의 켜도 모양이나 색깔이 만만치 않을 터였다. 사는 곳이 어디이건 스며든 시류의 여파는 본인들의 바탕대로 채색되어지는 것이다. 문화와 문명이 만개한 세상이다. 머지않아 여성의 끈기있고 섬세한 부분이 더 빛을 발하는 세상이 도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여성학자들만의 예단은 아니었다. 특히 정보 통신 시스템이 시골 농부의 농장에까지 정착되는 단계에 왔는데 전쟁놀이와 육체노동을 장악하는 남성들의 우람한 근육보다 여성들의 창의성과 순발력이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될 수 있다는 견해는 사회학자들만의 학설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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