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1)
시골 아낙인 호남의 뇌리에까지 남녀의 기본 체제에 대한 해체분석은 끝났다. 생존하는 것만을 따진다면 어느 환경에서도 호남은 잘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호남이 그렇게 시류에 휘말리는 사회적 인간이 되는 것을 양지는 막고 싶었다. 호남은 사회인이기 이전에 양지 자신의 동생이었다. 용감하게 이혼장에 날인을 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는 용기 있는 여자도 나쁠 것은 없지만 거칠고 억세지 않은, 따뜻하고 다정한 아내로 어머니로 호남이 살았으면 싶었다. 세상의 흐름이나 색깔 어떠한 것에 휘둘리지 말고 여성이, 아니 어미가 바른 자리를 잡았을 때 한 집안이나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는 더불어서 바른 모습으로 성숙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쩜 이런 난센스가 있담. 양지는 퍼뜩 현실의 표층 위로 뛰쳐나오며 쓴웃음을 지었다. 썩지 않은 씨감자라고 자신을 지칭한 호남의 비아냥거림이 되새김되었던 것이다. 양지는 자신의 안에서 저수지처럼 출렁거리고 있는 사유의 물결을 의식했다. 현실과 접합되지 않는 이론은 사문화 될 뿐이며 현실의 질서를 흩뜨리는 갈등의 뿌리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호남이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긴 가방끈과 도시생활의 연륜에 따른 안목의 격차가 약간 있을 뿐이다. 제 고집대로 살다보면 최 씨 가의 딸들은 남성인 아버지의 비웃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인데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으려는 호남. 무쌍한 사회변천의 변용물이기보다는 작아도 중심이 되어야한다.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중심 벼리가 되어야 한다, 모순적이게도 양지는 요즘 여성성의 본분에 대한 사색으로 숭숭 벌집이 된다. 우먼파워 시절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부분이다.
오늘도 하루가 갔다. 분홍색으로 커튼 깃을 물들이고 있는 낙조를 바라보며 양지는 가늘게 눈을 뜬다.
“언니는 간단한 것도 참 어렵게 생각해. 그게 탈이다. 봐 지금도 나한테 아무 일도 없었음 언니 간호는 누구한테 맡길 뻔했노.”
농담 같은 말을 구시렁거리며 밖으로 나간 호남은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벌써 두 시간도 넘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며칠 전에 받은 양지의 검사 결과까지 알아보고 오기로 했다. 호남이 가져 올 결과에 대한 궁금증을 누르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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