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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18)<178>탄생 100년을 맞는 시조시인 아천 최재호(6)
김귀현  |  k2@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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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06  21: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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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암 허형 선생은 ‘아천문집’ 서문에서 아천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세상이 쇠퇴해진 이후로 세상 조류가 강물이 세차게 흘러가는 듯하여 모두 근본을 버려두고 말초적인 것에 힘을 써, 이름과 이익은 중하게 여기고, 도덕과 의리는 가벼이 여긴다. 아천자에 부끄럽지 않을 사람 그 몇이나 될 것인가? 이 책이 간행되는 날 책을 보는 사람들이 먼저 부록에 씌어진 글들을 읽어보고서 아천자의 덕행과 사업을 우러러 사모하여 본받는다면 세상 도덕의 불행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니......”라 적고 있다.

‘아천문집’에서 김석규 시인은 아천의 작품 세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아천선생의 작품 세계는 우리 고유의 전통성에 접맥된 풍부한 서정과 정서에 깊이 뿌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작품의 편편이 스며 있는 주된 정서는 자연과 인간의 세사에 깊은 정한과 애정 그리고 경이로움의 작은 환희와 감동들로 한결같이 일관하고 있다. 형식면에서도 정형시인 시조의 전통적 율격을 그대로 살려 한 군데의 파격이나 실험적 태도의 고의성이 전혀 없이 그야말로 정격 그대로를 고수하여 순수와 전통성을 계승하기 위한 온건한 노력과 창작의 자세는 선생의 인격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아천의 덕행이나 언행 그리고 시조의 작품성에서 아천의 인간적인 풍모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재두 시인은 같은 책에서 ‘풍류 깃든 민족교육의 수범’을 써서 아천의 교육관에 대해 살폈다. “아천 선생께서는 민족이나 국가에 대해서는 거의 신앙적인 사상을 지니고 있던 분이다. 1960년대 후반 경남일보 사장으로 있던 시절에 윤전기를 구입하러 일본으로 갔었는데 그 당시의 울 국민의 생활상은 궁핍하기 이를 데 없던 시기였다. 그런데 일본 도회지의 고층건물, 그리고 길거리에 다니는 일본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고는 이국의 여창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다. 당시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어 온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고, 일본은 그들로서는 달갑지 않은 이코노믹 애니멀이라는 이름을 듣고 있었으나 경제 부흥상이 국제적으로 드러나고 풍요를 누리고 있었으니, 그들의 넉넉한 경제발전을 보고는 마음이 착잡했으리라.”

박시인은 그 다음 이야기로 이어간다.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는데 그것은 동양의 일본과 서양의 독일이 가진 공통점은? 그것은 여성이라는데 마음이 닿았다. 일본 여성의 교양, 독일 여성의 근면......그것이었다. 그 나라 여성 교육의 정도는 국가의 흥망을 좌우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귀국한 것이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여학교 건립의 설계를 추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988년 3월 29일 영결식에서 시인 이석은 조시 ‘아천 최재호 선생 영전에’를 읽으며 애도했다. “고성 학동 명가의 핏줄/ 그 덕과 행으로 종문에 빛을 더한 아천 선생/ 사람이 백년을 산들 여한이야 남겠지만/ 물 맑고 햇살 고운 이 땅의 하늘/ 저 멀리 지리산은 만년 함묵을 지키고/ 남강물 굽이도는 역사의 땅 고도 진주/ 그 문화의 옷깃을 빛낸 그 업 그 공은/ 저 강물처럼 길이 흘러 마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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