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5)
양지는 뜨끔했으나 시치미 뗐다.
“한때는 그랬지. 그렇지만 세월 따라 환경 따라 생각도 바뀌게 돼있어.”
“난 내 이름도 잊어먹고 사는지 오래돼서 그런 진 몰라도 이상하더라. 그 여자 딸이 결혼하면 거기서 난 아이들은 성이 세 개나 되나? 하여튼 세상 참 요상하고 복잡하게 변해. 또 모르지 내 딸이 깃발 세우고 엄마 성을 써주면 고마울란가 몰라도.”
음료를 같이 마시고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동안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빨랐다. 양지는 대강 생각나는 이름의 동무들 근황을 물었다. 정자는 묻지 않은 아이들 얘기까지 들먹이며 까맣게 젖혀놓았던 어린 시절을 들추어 주었다.
웃고 떠들던 정자가 습관적인 동작으로 시계를 보더니 놀라 일어섰다.
“큰애가 학원 갔다 올 시간 됐어.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건지, 짬 봐서 또 올게. 애들 연락되면 몇 같이 올 수도 있고.”
“어머니 오시거든 내가 못 뵙고 가더라도 인사 좀 전해 줘. 너무 감사했다고.”
했다. 그러나 정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울 엄마? 인제 우리 집에 안 올 거야. 엄마, 제발 우리가 모녀간이라는 관계만이라도 고이 간직한 채 살고 싶다고 내가 그랬어.”
“무슨 뜻이야 그게. 너 보니까 잘 사는 것 같은데 좀 잘해드림 될 거 아냐.”
양지는 문득 어이없이 놓쳐버린 엄마에 대한 회한이 솟구쳐 코끝이 찡해졌다. 그러나 정자는 딴판이다. 심중에 맺혀있는 말을 하기위해 다시 아무렇게나 의자에다 걸치는 엉덩이의 모양에 억울함이 잔뜩 뭉쳐져 있다.
“말도 마라. 골치 아프다. 우리 엄만 자식들을 황금 거위라도 키워 놓은 줄 안다. 달마다 용돈 걷어 드리고 철마다 옷 해드리고 여행 보내드리고, 대평 지역 이주민 전체를 봐도 외국 여행 제일 많이 갔다 오고 먼저 갔다 온 사람도 우리 엄마다. 그런데 이젠 이 할만네가 얼굴에 검버섯 다 빼고 주름 펴는 성형 수술까지 하고 싶어 한다. 눈썹이 찔러서 눈을 못 뜨겠다고 야단야단해서 눈 쌍꺼풀 수술도 시켜줬더니 끝도 갓도 없다.”
그제야 양지는 정자어멈을 얼른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를 알았다. 말을 낸 김에 정자의 입에서는 청산유수처럼 억하심정이 쏟아져 나온다.
“나 직장 다닐 때 우리 애들 키우고 살림 살아줬다고, 이제 그 값을 쳐내란다. 내가 네 종이냐고 따지고 가정부 월급 반이라도 쳐내라고 억지소리하고, 망령 났나 싶어 안ㅤㄱㅏㄼ다가도 너무 울화가 치밀어. 세상에서 제일 가깝다는 게 엄마하고 딸 사인데 엄마가 자식 일 좀 거들어 줬다고 일 삯 내놓으라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따졌더니 그래도 안 지고 그런 사람 여기 있다고 가슴 쓰윽 내밀고 나서면서 우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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