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6)
“그래도 서운한 구석이 있었으니까 그러셨겠지 너네 엄마도 보통 분은 아니시잖아.”
“너 그 말 잘했다. 엄마도 그런 소리 하더라만 내가 신경 쓸 사람이 어디 친정엄마 뿐이냐. 시부모 생일이나 큰집 제사 시숙 동서 조카까지 챙길 사람이 한 둘이야? 또 나도 뭔가를 해야 남 뒤떨어지지 않게 사회활동을 할게 아냐.”
“너도 네 욕심 차리기는 마찬가지네 뭐. 부모는 자식 뒷바라지나 하다가 돌아가시란 법이 어딨어. 요즘은 어른들도 그렇게 맹목적이고 어리석지만은 않더라. 내가 볼 땐 네 이기심하고 엄마 서운함이 상충된 갈등인 것 같다.”
“물론 그런 것도 없진 않겠지. 하지만 이 할마시가 글쎄 딸자식 사는 걸 질투하나 싶을 때가 있으니까 엄마한테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우리 할머니는 자식들한테 좋다면 자기 금이빨도 뽑아 줬잖어. 아무튼 우리 엄만 달라. 너무 별나. 화장품도 외제 아니면 안 되고 속옷도 기능성으로 맞춰 입겠다고 그런다. 노인네가 손톱에 매니큐어 칠하고 머리칼 안 빠지는 고급 샴푸 아니면 퇴짜 놓고, 너 안 겪어 봐서 그렇지 옆에서 보면 정말 저 노인네가 내 엄만가 싶어 멀거니 쳐다보게 된다. 나 사실 언젠가는 낳아준 게 하나도 고맙지 않다고 대든 적도 있어.”
“니들이 그렇게 해드리니까 마을에서도 아들 딸 효도 받고 산다고 다른 집 어른들한테 대접받고 사시잖아. 너네 집에 동네 할머니들 다 모이는 갑던데?”
“몰라, 아무튼 골치 아픈 노친네야. 이제 좀 뒤로 물러서서 점잖게 보살마님처럼 살면 얼마나 좋겠어.”
“얘 그런 소린 하지 마. 너도 여자고 엄마처럼 늙을 텐데.”
“아유 우리 엄마가 하던 말인데 어쩜 너도 똑같은 말을 하네. 징그럽다 얘. 너네 엄마가 만약 그랬다면 너도 나랑 똑 같았을 거다. 엄마란 사람이 어쩜 그렇게 딸을 질투하노 말이다. 난 절대 안 그런다. 지금 끔찍이 보고 깨우치는 게 그건데.”
“그렇지만 사람이 늙으면 본성밖에 안 남는다잖아. 이 세상 얼마 안 남았다는 강박관념에 허둥대며 못해 본 건 다해보고 싶어서 떼쓰듯이 남은 힘을 다 쏟아낸다더라.”
“시집도 안간 애가 별 소릴 다 한다.”
“귀는 그냥 있는 게 아니지. 난 너네 엄마가 너네 할머니랑 다투시고 우물가에 걸레 빨면서 그러시는 것 들었다, 옛날에. 좀 전에 네가 했던 꼭 그대로. 인습은 수 천 년 간 내려오면서 단련되었어. 이미 새로움이란 없어.”
“야, 말도 마라. 나도 나지만 우리 올케들이 더 네 엄마를 얼마나 존경했는지 모른다. 나이 든 분답게 조촐하고 검소하게 늙어 가시는 게 훨씬 품위 있어 뵈고 좋다니까 우리 엄마는 그것도 질투를 해서 며느리나 딸년들 젊은 것들은 똑같다고 욕을 하고 난리가 아녔다니까. 우리엄마 흉내 한 번 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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