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7)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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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7)

“지 자식한테는 봄바람이고 에미한테는 겨울 북풍이라고 내 말 트집도 잡는다. 큰딸애가 놀이동산에 갈 일이 있어서 지갑을 탈탈 털어주고 나니까 글쎄 엄마가 자기도 치과에 가야된다고 손을 내미는 거라. 내일 가라고, 돈이 없다고 했더니 지 자식 놀러 보낼 돈은 있어도 에미가 아파서 병원에 간다는데 그 돈은 아깝아서 안준다고 고함을 지르더라. 그런 억측이 어데있노. 할머니한테 자기도 그래놓고. 지나고 보니 참 옛날 말 틀린데 없어. 분명히 말하는데 너 이건 알아둬라. 치사랑은 없어도 내리사랑은 있다.“

“자식들이란 너도 나도 다 참 못됐긴 했어. 앞날이 얼마 안 남았다 싶으니 조급하고 잘 삐치고 그러는 건 너희 엄마만 아니고 연세 든 분들 대개 그런 갈등 자식들하고 겪는다더라.”

”그래도 우리 엄만 해도 해도 너무 하니까. 솔직히 말하면 자식이 어데 나뿐이냐? 우리 남매가 몇인데.“

하다 보니 대화의 주제가 턱없이 옆길로 뻗고 있다. 남들에게는 그런 존경스러운 모습으로 비친 어머니한테 나는 뭘 잘했다고 친구에게 이런 충고를 하는가 싶자 미안해진 양지는 먼저 작별인사 할 손을 내밀었다.

”나도 엄마가 계실 때는 너 비슷한 심정이었어. 그런데 막상 엄마가 돌아가시고 보니까 모든 게 후회돼서 그래. 이제와 생각하니 엄마는 단순하게 나의 육체를 낳아 준 엄마가 아니고 사상이나 철학 등 인생의 모든 연륜을 갖춘 훌륭한 선배였어. 내가 한 말들이 꼴같잖게 들렸으면 이해해라.“

“지금은 전혀 감동 안 되는 말이지만 앞으로 생각해보고 참고 할게.”



정자가 빙싯 웃어주고 돌아가자 휑하게 남은 공간에 그녀와 주고받았던 말들이 여운으로 남아서 맴을 돌았다. 호랑이는 고양이를 보면 물어 죽이고 마는데 그 이유가 저를 닮아서 그렇다던가. 어머니가 살아있었다면 양지 자신도 정자와 별반 다름없는 반목으로 속상했을 딸이다. 그렇지만 정자와 맞장구를 쳐서는 안 될 일이었다.

딸은 어머니를 감싸야하고 여자는 여자끼리라도 보호하고 힘이 되어 주어야 된다는 깨달음은 정말 뒤늦게야 당도한 정처나 다름 아니다. 결국 어머니를 극복 못하는 한계에서 딸들은 어머니를 헐뜯게 되는가. 죽음으로 헤어지고 난 뒤에야 무모했던 도전에 대한 열패감으로 통곡할 때까지 꿈쩍 않는 뒷동산을 발길로 걷어차듯이.

양지는 멀거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호젓이 혼자 있게 된 일들이 꿈속이거나 영상으로 남의 일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병수발과 대책 없이 성깔만 남은 아버지, 이혼한 호남과 처녀의 몸으로 길러야할 정남의 딸, 무거운 수레바퀴를 돌리려면 무한정으로 넉넉해야할 돈…. 양지는 고개를 저었다. 이 조차 사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밀 검사에 들어간 위 세포에 대한 판정은 어떻게 내릴 건지. 그녀는 아직도 쉼 없이 떨어져 내리는 주사액 따라 방울방울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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