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위식의 발길닿는대로 (92) 법인사와 광풍루
윤위식의 발길닿는대로 (92) 법인사와 광풍루
  • 경남일보
  • 승인 2017.04.1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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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향 그윽한 봄바람을 따라 유장한 역사와 문화의 향기에 젖으면서 선현들이 남기고 가신 발자취를 따라 옛 정취를 더듬어볼까 하고 함양의 안의를 향해 차를 몰았다. 35번 고속도로 지곡요금소를 나와 24번 도로를 따라 시오리 남짓한 거리의 안의면 소재지에 닿아 문화유산의 보물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법인사를 찾았다.

법인사는 안의면사무소와 초등학교 사이의 파출소와 인접한 동네 가운데 자리 잡은 마을 속의 절집이다. 도로에 바짝 붙은 두 칸짜리의 대문간은 2층에는 범종이 달려 있어 범종각인 종루이며, 대문짝에는 금강역사가 그려져 있어 천왕문이기도 한 특이한 모습이지만 심산절집과도 같이 단청도 화려한 문루에는 법인사라는 편액이 덩그렇게 붙어 있어 고찰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대문 옆으로 바짝 붙은 우람한 느티나무는 수령 500년에 둘레가 5m가 넘는 거목인데 육중한 덩치로 근엄하게 버티고 있어 옛 역사의 흔적을 어렴풋이 일러주건만 절집의 건물은 천년고찰과는 전혀 달리 공포도 익공도 없는 우진각 기와지붕에 마루청이 없이 칸칸이 문을 달았는데 여덟 칸으로 기다랗게 늘어진 큰 집이다. 오래전에는 안의동헌의 질청이라 하여 하급관리들의 사무소로서 아전들이 업무를 보던 곳이라고 전한다지만 극락보전이라는 편액이 붙은 법당건물이고 좌우로는 요사가 자리를 잡았다.

둔탁한 듯 맑고 밝은 목탁소리에 가늘고 여린 독경소리가 나직하게 뒤섞여서 들러오는 법당으로 들어섰다. 향 내음이 가득한 법당에는 천장의 장식은 작은 연등이 한편으로 빼곡하고 대들보와 서까래가 그대로 보이는데 자그마한 본존불의 아미타불상과 좌우의 탱화가 전부인데 채색이 화려한 닫집이 수미단의 천장을 단아하게 꾸미고 있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아미타불상은 등신불의 크기인데 양 어깨를 덮은 법의는 개금의 광채가 유난이 반짝거리고 결가부좌의 무릎은 높이가 낮고 너비가 펑퍼짐하여 안정감의 조화가 지극히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데 머리는 15도 정도로 아래로 굽히고 있어 온화하고 자애롭다.

스물일까 서른일까 아니면 불혹의 나이일까, 지천명도 아니고 이순도 아닌 것 같고 미수야 더더구나 아닌 것 같은데 상호인 용모로 보아서는 도대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해탈과 깨달음의 참 모습인 부처의 모습일까. 아라한은 노령의 모습이고 산신각의 탱화도 독성각의 존자도 명부전의 시왕도 모두 고령의 노인인데 부처와 보살의 상호는 세월의 나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으니 시공을 초월한 부처의 경지에선 외양과 용모도 범속과는 다른 건가.

사시마지를 올리는 비구니스님의 독경소리와 목탁소리만이 법당의 고요를 무상무념의 오묘한 경지로 몰입하게 하는데 무슨 소원이 있어 중년의 아낙은 자리를 빗겨 잡고 쉬지 않고 정성스레 절만 하고 있을까. 중병 깊은 가족이 있어 쾌유를 비는 걸까, 장성한 자녀의 배필을 원함일까, 일자리를 구하려는 간절한 소망일까. 무엇이 저토록 간절하기에 손수건을 적셔가며 절을 하는지 간절한 소망은 알 수 없으나 지극한 정성에 숭고함이 배어난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삼경 깊은 밤에 장독대 앞에서 작은 소반 위에 정화수 올려놓고 촛불 켜고 빌고 빌던 거룩함이 저러한 것이던가.

지칠 줄 모르는 간절한 기도가 너무도 거룩하여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미타불! 향불의 연기는 실낱같이 하늘거리고 아미타불상은 가만히 내려다보고 계시는데 무릎에 얹은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했고 오른손은 앞으로 내밀어 중지와 엄지의 끝을 맞대었고 나머지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구부렸는데 어쩌면 저리고 고운지 섬섬옥수라고 하면 무례인지 몰라도 가늘고 긴 손가락이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추어 가늘게 꼼지락거리는 것만 같고 수없이 절만 하는 아낙을 향해 얇은 입술이 연방이라도 움직일 것만 같다.

여느 절집이던 석불이든 목불이든 불좌상의 외모를 보면 대부분이 허리부분이 너무 짧아서 웅크리듯 한 체형인데 법인사의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은 허리부분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몸매의 균형이 날씬하고, 상호 또한 각진 곳이 없어 삼면에서 보아도 빈 곳 없이 갸름하고, 아래턱의 도드라짐도 허하거나 드센 느낌이 없어 온화하며 눈매 또한 날카로움이나 지긋한 모습과는 달리 평화롭고 자애롭다. 미술의 문외한이 뭘 알겠냐만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보면 볼수록 무엇인가를 일러줄 것만 같은 아미타여래불의 숨은 뜻을 알 수 없지만 자꾸만 절을 하게 하는 이끌림의 까닭도 알 수가 없다.

 
 


사시예불을 마치신 비구니스님이 눈여겨보는 속객의 뜻을 알았던지 아미타여래불은 목조로서 보물 제1691호이고 감로탱화는 보물 제1731호이며 지장탱화는 감로탱화와 동년의 작품으로 경남도 문화재라고 일러준다. 속세와 더불어 불국정토를 이르려함이던가. 중생의 제도를 위해 세속을 마다 않고 속인과 함께하려 심산절경을 버렸단 말이던가. 심산절집마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대불과 대종을 다투어서 조성하고 옛 문화 옛 정취는 염에도 없는 건지 허물고 넓혀서 궁궐 같은 당우들을 미로같이 건립하며 위세와 위용의 중창불사로 아쉬움을 안기는데 법명이 ‘경재’라시는 비구니스님은 오백년 문화유산이 혹여 비라도 센다면 어쩔까 염려될 뿐 수행의 공간이야 이만하면 족하다며 염주만 굴리신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기도도량 고찰 법인사는 세속의 정토를 위해 오늘도 목탁소리 염불소리 그윽하게 울려낸다.

인접한 거리여서 걸어서 광풍루를 찾았다. 안의를 지날 때마다 언제든지 오르기만 하면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고 고색창연한 옛 정취에 세상사를 잊게 하는 광풍루는 빼어나게 멋스럽고 날렵하며 웅장하다. 왕버들 늘어진 금호천의 강변에서 가만히 치어다보면 공작의 날개 끝이 저리도 날렵할까. 봉황의 꼬리 끝이 저리도 사뿐할까. 연방이라도 하늘 높이 날아오를 것만 같은 추녀는 떠가는 흰 구름을 전송이라도 하는 듯이 드높이 치솟았다. 전란으로 소실되어 중수를 거듭해 왔어도 600여년의 애환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광풍루의 누마루 위에는 현감이신 일두 정여창 선생께서 어지럽고 소란스러운 오늘의 세상을 말없이 굽어보며 도포자락 드리우고 우뚝하게 서시어 후대의 창성함을 기원하실 것만 같아 선현들의 체취 서린 옛 세월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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