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8)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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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8)

저녁 식사가 배달될 때야 호남은 돌아왔다.

“일 나서 당장 막차로 떠나라. 그게서 입원을 해도 하고. 자존심 상해서 도저히 못 참것다.”

정자가 다녀 간 이야기를 하자 호남이 바르르 화를 냈다. 언니야, 니 좋아하는 단팥죽도 사왔다 하며 다정하게 굴던 모습이 돌변하며 조심스럽게 꺼내던 먹을거리 꾸러미를 아무렇게나 흔틀만틀 드놓기도 한다.

“시장에서 만났을 때 병원에 있단 소리를 해놓고는 속으로 후회했더마 참말로 문병 온다꼬 왔던 가배.”

자신의 말실수로 엄청난 일이 빚어진 것처럼 상심까지 하는 호남이 양지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삭이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지 호남의 목에 걸린 불평은 계속되었다.

“공부를 더해서 박사가 되던지 취직해서 사장이 되던지, 니가 돈 못 벌모 내가 벌어 댈낀께 뭐든 다시 시작하란 말이다. 뭐, 지도 뭐 촌년이 서울 사람 흉내나 내면서 별로 모범적으로 살지도 못하면서 되게 재고 다니는 거 눈꼴시어서 몬본다. 괜히 말했다 싶었더마, 이놈으 입주딩이로 째삐리고 싶네. 언니 니 위문 온 게 아니라 저 잘사는 거 자랑하고 지 눈으로 본데다 배로 보태서 동네방네 니 소문낼라꼬 온 거 아이가, 누가 몰라서.”

자랑거리가 속에 가득 고여 있는 사람의 본심이란 어떤 계기로건 표출되게 되어있는 것, 그건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 된 대로 있는 대로의 현상을 그대로 보고 들어주면 그만인데 호남은 꼬여있는 현실을 제 심사대로 곡자를 들여대서 직선 재단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양지는 화제의 방향을 돌렸다.

“나간 일은 어떻게 됐어?”

“무슨 일?”

“너 일 보러 나간 거 아녔어?”

“응. 결과 본께 마른 성질 땜에 생긴 병인데 성질 누그러뜨리고 좀 오래 입원 치료하모 개안탄다. 큰 병, 죽을병인가 싶어서 눈 때꾼하게 뜨게 의사선생 입만 쳐다봤는데 나도 몰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몇 번이나 절을 했다 아이가.”

“나 아픈 거 말고 네 일.”

“아, 그 일? 일할 데는 쌨는데 확답은 안하고 왔다. 참, 언니 이라모 어떨꼬?”

호남은 무슨 대단한 아이디어라도 떠올랐는지 호흡과 자세를 동시에 낮추며 양지의 눈앞으로 얼굴을 들여 밀었다.

“나랑 언니랑 서울 가서 사는 거. 거기서 같이 돈을 벌어도 되고.”

양지는 대꾸 없이 호남의 말을 들었다. 왜 꼭 서울이어야 하는가. 양지는 꼭 서울로 가야한다고 믿는 호남의 발상이 거북스럽기 짝이 없다. 삶이란 높이로 따질게 아니라 행복지수로 따져야 되는 데 문화가 발달된 곳에 산다고 사람들 모두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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