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9)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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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9)

“무슨 일을 해서?”

건성인 물음을 눈치 못 챈 호남은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한다.

“글쎄, 뭐 어데 난 서울이라꼬 일이사 찾아보모 쌔빌렀을 아이가.”

“얼마나 벌건데?”

“아우, 그런 성의 없는 물음이 어딨노. 성의라곤 토끼 꼬랭이만큼도 없이. 돈이란 많을수록 좋은 거 아이가.”

“호남아, 좌중해야 돼. 이번 일을 계기로 살아 온 날들에 대한 점검도 해보고. 넌 지금 실에 매여 둥둥 뜬 풍선처럼 네 본심하고는 너무 다르게 변하고 있어.”

듣고 있던 호남의 얼굴색이 조금씩 변하더니 이내 경직된 파르족족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내 본심이 어떤 긴데?”

“널 나쁘게 하는 말은 아니다.”

“그리 얼버무리지 마라. 기몬 기고 아니모 아닌 기지, 모두들 와 나한테는 그리 고약시럽노. 내가 뭘 그리 잘못 하노.”

그렇다, 지금 이 아이는 선불 맞은 짐승처럼 극도의 피해의식에 젖어 있을 것이다. 이 나마의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평소의 그녀다운 배포가 있기 때문이다. 양지는 얼른 표정을 바꾸고 호남을 달래려 했다.

무례한 기척으로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들어 선 것은 그때였다.

“쉰밥에 파리 꾀듯이 두 년이 운재꺼정 대가리 맞대고 같이 붙어 있을 것고?”

아버지는 다짜고짜 된소리부터 냈다. 어디서 술을 한 것 같았다. 머쓱해진 자매는 입을 다물었고 호남은 아버지가 앉을 자리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리에 앉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지 몹시 화가 나있었다. 언제는 아버지가 우리에게 상냥했었던가, 감안을 하더라도 마음속의 어떤 작정이 드러나 보이는 거동이었다. 아버지는 아픈 사람인 양지는 본 체 만 체 호남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후려치는 회초리처럼 매서운 눈길로 호통을 친다.

“당장 가서 니 새끼 찾아 안 오고 여서 무인 새살로 그리 늘어놓고 있노. 반피 보다 못한 년.”

“아부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예. 그렇지만 끼고만 있다꼬 부모 노릇 다하는 줄 압니꺼? 그냥 가만히 계시이소. 주영이 장래에 대해서는 제가 아부지보다 더 걱정하고 있으이까내 염려 마시고예.”

“종자가 없이모 농사 집 망하는 짝으로 사람 사는 세상도 그와 일리라. 에미가 새끼 중히 여기는 맴이 없이모 이 노므 세상이 어디로 가노. 산으로? 하늘로? 주딩이만 야물었제. 네년들이 도대체 해놓은 기 뭐꼬.”

아버지가 취중인 것 같으니 그만하라고 양지가 눈짓을 했으나 호남은 생수 한 잔을 부어 아버지께로 내밀면서 부어오른 입만큼 불퉁스럽게 악다구니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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