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2)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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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2)

잠 든 듯 눈을 감고 있으려니 병원 곳곳에서 여러 가지 소음들이 들려온다. 들락거리는 문소리, 복도를 지나다니는 발소리. 이상하게도 앓는 소리는 별로 없고 웃음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수술 환자가 뀐 방귀는 악취조차도 환영이고 기쁨이 되는 곳이 여기다.

부스스 눈을 뜨는 것도 희망이며 의식도 없이 호흡기로 연명하던 환자가 미세하게 손가락만 깐닥거려도 은총이고 기적이 되는 곳, 이 낮은 곳에서 갖는 기쁨들과 행복은 너무나 미미하고 여린 것들이다. 마치 이방의 한 지역인양 병원은 일시적으로 사람들의 기본 인성을 바꾸어 놓지만 병원을 나서는 순간이면 애드벌룬처럼 부풀린 욕망의 허상에 속아 다시 헉헉거린다.

고단한 몸을 편히 뉘인 이대로 생각 없이 곤히 영원히 잠들어 버리면 좋겠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던 양지는 소스라치며 머리를 흔든다. 이렇게 맥없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에 대한 모독인 거였다. 호남아. 양지는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누군가의 살갗이었으면 싶은 따뜻함이 간절했다. 호남이 누운 침상은 저만큼 떨어져 있다. 다시 아버지의 기갈 차던 질책이 상기되었다. 그처럼 꼿꼿하던 아버지의 저력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척이 났다. 분풀이를 다 못한 아버지의 출현인가. 미간을 모으고 바라보자 고종오빠가 빙긋 웃음 띤 넉넉한 얼굴로 다가왔다.

“늦었는데, 안 오셔도 되는데 또 오셨어요?”

양지는 짬짬이 들러주는 고종오빠의 방문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다. 아무리 핏줄이 엉켜있는 사이라지만 인사를 튼 기간에 비해서 너무 많이 빚지는 기분만 쌓였다.

“외삼촌 여기 안 들러셨나?”

과격하게 화풀이를 하려들던 좀 전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양지와 호남의 시선이 부딪쳤다.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하셨어요?”

“영감님이 겉으로 표현은 안하셔도 동생들 이런 것 보고 속이 많이 상하신거라.”

“그란 해도 한바탕 하고 가셨어예. 언닌들 어디 이라고 싶어 이라것어예? 아픈 사람 앞에서 언내 욱대기듯 막하고 가시모 서로 간에 비위만 더 상하지 금방 무슨 뾰족한 수가 납니꺼.”

“그야 이럴 말이겠나 만. 연세가 높으면 생각도 높은 산 같다 하더니…. ”

오빠는 문득 얼른 선문답 같은 말을 끊고 음료수와 컵 등의 잡동사니가 얹혀있는 양지 머리맡의 탁자 쪽을 유심히 살피는 것 같더니 호남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어른이 뭐 안 들고 오셧던가?”

“뭘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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