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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20)<180>문인들이 선호하는 경남지역 속의 소재들(2)
김귀현  |  k2@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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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20  21: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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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은 경남 지역 어디를 소재로 시나 소설을 쓰는가, 또는 어떤 역사나 상황을 대상으로 즐겨 다루는가, 하는 것이 이 글의 과제이다. 오늘은 3.15의거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점에 주목하면서 그 두 번째 이야기를 펴고자 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3.15의거’는 1960년 3월 15일 자유당 일당독재가 획책한 부정선거일에 마산에서 분연히 일어난 민주항쟁의 의거를 두고 일컫는다. 3.15의거 정신은 ‘자유, 민주, 정의로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 더불어 아름다운 공동체를 지향한다’로 요약된다. 그때의 희생자들은 12명으로 일명 12사도다. 오성원, 김주열, 김영호, 김효덕, 김영준, 김용실, 김삼웅, 전의규, 김영길, 김종술, 김평도, 강융기 이상 12사람이다.

시인들은 이 3.15의거를 두고 시간에 구애없이 지금까지 작품을 쓴 사람은 210명을 헤아린다. 이 수치는 ‘3.15의거시전집’에 실린 사람들의 숫자이다. 다수의 시인들은 집계에서 빠졌을 것으로 본다면 거의 300명이 3.15의거를 노래한 것일 터이다. 그런데 통칭 4.19혁명은 대구 2.28, 3.15마산 1차, 4.11마산 2차, 4.18고대시위, 4.25대학교수단 시위, 4.26대통령 하야 등을 망라한 개념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3.15의거는 4.19에 예속되는 의거가 아니라 그 자체로 독자적인 의거로 국가 기념일까지 지정되어 있어 여기서는 3.15부터 4.19 이전까지를 순수 3.15의거 시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보고자 한다.

3.15의거시 원조는 김춘수의 ‘베꼬니아의 꽃잎처럼이나’(3.28 국제신보)이다. 이 시는 4월 11일 제2차 마산의거 이전에 발표된 작품이므로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세력에 직접 항거한 의거의 노래였다. 김춘수는 당시 어디에서 무엇하는 사람이었을까? 마산 소재 해인대학(현 경남대) 조교수였다.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3월 신학기에 발령을 받은 것으로 치면 조교수 발령장 잉크가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면 작품을 발표하는 그 무렵에 조교수가 되었다면 용기가 하늘을 찌르는 것이었으리라. 교수가 될둥 말둥한 시기에 용기 있는 저항시를 썼으니 아마도 김춘수는 대학 조교수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춘수는 1959년 11월 제6시집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춘조사)을 출간한 이력이 있다. 표제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은 1956년 11월 헝가리 민주화 과정에서 빚어진 소련군의 무자비한 침략을 한 소녀의 죽음을 통해 표현한 작품이었다. 헝가리의 민주화 운동을 꺾기 위해 소련은 탱크 2500대, 장갑차 1000대의 대부대로 헝가리에 쳐들어가 무차별 포격을 가해 시민 3천명이 사살되고 20만명이 서방으로 망명했다. 시인은 소녀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썼다.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트렸다/순간/ 네 바숴진 두부는 소스라쳐 삼십보 상공으로 튀었다./두부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를 적시며 흘렀다./-너는 열 세 살이라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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