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3)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3)

“동생 줄라꼬 약을 좀 고우신 모양인데 화재가 좀 빈약했던지 약재를 구하러 산에 가셧던 모양이라. 마음만 젊었지 인자 나도 다 됐는갑다 하시며 파스를 붙이돌라시더라꼬.“



양지는 그제야 아버지의 체취와 함께 풍겨오던 뜬금없던 파스냄새의 정체를 상기했다. 그러나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돌연히 옮아오는 호남의 눈길이 옆얼굴에 꽂혔다. 오빠는 그 특유의 조신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힘이 들든 어쩌든 소일거리가 됐다. 앞이 텅 비니까 그걸 못견디시겠던 모양인데, 이놈의 바늘 세상에 사는 것도 아니고, 나는 와 이리 간데족족 안 좋은 것만 걸리고, 내 세상이 와 이리 안편냐고, 저녁을 같이 드시자 캐도 마다하시고, 안주라도 드시게 할량 장국 집엘 갔더마 결국 술만 좀 자시고 통 음식을 안 드시더라. 한실 용남이 조카 집에도 가셨던 모양이라.“

용남? 양지도 호남도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장애자인 언니가 쑥쑥 낳은 아이가 몇 남매나 된다는 소리를 귀담아 들었다기보다 치종 장하는 암퇘지가 자식들을 꿰차고 두엄 밭에 누워있는 비루한 행색만을 떠올렸을 뿐 언니라고 한 번도 호의적으로 염두에 두어 본 적이 없었다. 그제야 양지와 호남을 향했던 아버지의 턱없이 날선 비난과 끈이 닿았다. 아버지가 그쪽으로 내왕하는 것을 호남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혼자 계시자니 쓸쓸하셨던 모양이라. 거기가면 애들 줄 거라고 용돈 털어서 학용품도 사고 어떤 때는 삼겹살을 갖고 가시기도 해. 굽은 솔이 선산 지키고 비루둥이 효자 노릇한다며 대견해 하시는데 여간 위안이 아닌가봐.“

”언내는 우짜고예? 설마 앨 업고 거기까지 간 건 아이지예?“

”참, 그 말 안했던가? 외숙님도 참, 나는 스스로 하신 줄 알았지. 그 애, 제 엄마가 와서 외삼촌하고 상관없는 애라 고백하고 찾아갔단다.“

”예에?“

돌연한 호남의 눈길이 양지에게로 향했다. 겨를 없이 치른 일들에 신경이 쏠려있던 탓도 있지만 잘 해결된 일이란 안도감 때문에 호남에게 전달할 생각도 흘려버린 채 지났다. 양지는 아무 말 않는 것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시를 했다. 예상되는 호남의 반격을 의식한 듯 오빠가 먼저 정리를 했다.

”외숙모님 속앓이 하시고 돈 날린 걸 생각하모 참 어이없는 일이지만 잘 해결됐다 생각해라. 어른도 내 팔자에 무슨, 하시면서 언내 생각해서 잘됐다 하시더라.“

오빠의 말뜻을 헤아려보던 호남이 갑자기 깔깔 웃었다.

“영감이 사기 당했다 그 말 아입니꺼?”

곧바로 답을 못하고 겸연쩍게 어물거리던 오빠가 그나마 다행인 듯 마주 웃으며 무마했다.

“다 지나간 일인데 뭐 흰 강생이 검은 강생이 따지겄노. 어른이 적선한 셈친다꼬 결론까지 내리셨는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