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5)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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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5)

양지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그 여자를 찾아갔던 것은 너무 과민반응을 했던 것이 아닌가, 새삼스레 창피한 감도 없지 않았다. 양지는 가난과 질고로 뒤엉켜있던 인식이 모자의 생활 장면을 떠올리면 같은 여자로서 다시 안쓰러워지는데, 평생 계속될 것만 같던 질기고 후진 인연이 그렇게 한 순간에 끝날 수도 있다는 실감 안 나는 현실을 실감하기 위해 호남이 다시 물었다.

“언내를 돌려줄 때 아부지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외숙님 기출이 아이라꼬 고백까지 했고, 또 자식을 키우는데 어미 이상 없는 걸 왜 모르실까. 자기 관리도 션찮은 노인이 약 멕이고 우유 타 멕이느라 밤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는데 그 고통이 어디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인가.”

순간 양지의 눈길은 호남에게로 슬쩍 돌려졌다. 전처럼 주영이를 학원에 보내면 아이가 걸리적거려서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 거칠게 들떠있는 호남의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자식의 재롱이나 그에 대한 의무는 무엇보다 확실한 힘이 되어줄 것이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살아있는 어미와 떨어져 살아야하는 안쓰러운 주영의 처지는 ‘수연’이라고 위탁모가 지어준 이름으로 존재하는 정남의 아이보다 댈 수 없이 심각하다. 감각이 숙성해 있는 주영의 경우는 지금 곧바로 구해내지 않으면 치유 불가능한 내상을 평생 안고 가게 될 것이다.

“큰애 죽은 지 한 주일 쯤 됐나보던데, 아는 사람 말을 들으니 대단했던 모양이야.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옛말이 하나도 거짓 아니지. 성한 자식보다 성치 못한 자식이 더 부모한테는 애간장을 끓이는 법이거든.”

“오빠가 아부지한테 좀 물어보지 그랬어요? 또 아들 잘 낳는다는 여자 있으모 아무하고나 동침할 거냐고.”

호남이 던진 실없는 말에 오빠도 픽 실소를 하며 즉답을 던졌다.

“외숙님도 인제 많이 깨달으ㅤㅅㅣㅆ겠지.”

용을 쓰서 뻗대던 에너지 통이 갑자기 증발해버린 후줄근한 허탈감이 병실 안의 세 사람을 감쌌다.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오빠가 혹시 외삼촌이 집에서 기다릴지 모른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둘만 있는 깊은 밤이 되자 양지는 은근한 목소리로 호남을 불러 일렀다.

“호남아, 너도 주영이 데려와.”

호남은 못들은 척 개고 있던 수건의 펼 것도 없는 주름만을 매만지는데 열중한다.

“어린 게 남의 눈치 보면서 얼마나 엄마가 그립겠노.”

그래도 귀에 걸리는 부분이 없잖았던지 호남이 대뜸 말을 받았다.

“그 계집애는 안 그래. 제 친구들만 있으모 나는 뒷전인데 뭐. 밤에도 집에 안 들어와서 저 할머니랑 아빠까지 동네 아아들 집을 다 치고 다녔던 적도 많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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