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8)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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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8)

“엄마 시대보다 많이 배우고 많은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의식은 엄마보다 훨씬 퇴보하고 병들어 있어. 지나친 피해의식으로 상처받은 정체성을 회복하고 거듭나야 될 때라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여자들은 현명하고 슬기로운 의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해야 돼.“

쇠귀에 경 읽는 식일지라도 양지는 멈추지 않았다.

“전통을 부정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는 없어. 우리는 손상된 여성성을 정비한 가운데 발전을 모색해야 돼. 그리고 굳건한 나무에 핀 꽃과 잎사귀 그리고 열매가 인류의 미래를 풍요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발전적이고 계승적인 구도는 유사이래의 모든 여성들에 의해 개선되고 정립된 것이다. 너와 나 개인으로 새삼스레 우리가 발견하고 개혁해야 될 부분은 없어. 너나 나는 모두 엇길로 와서 지금 하나의 기로에 놓여 있어. 획득이나 극복을 투쟁일변도로 보는 견해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흔히 여우라고 일컫는 여성들의 유연한 사고와 지혜로 조화를 꾀하는 융통성이 바람직 한 거야. 가까운 예로 엄마가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돼 있을까? 방황과 정체부정으로 고민하는 가운데 좋은 시절을 허비해 버린다면, 더 이상 여자이기를, 어미이기를 거부한다면, 다른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니. 지금 겪고 있는 우리들의 혼란과 비극은 피해자와 가해자 밖에 모르는 고정된 논리와 편견에서 비롯된 거야. 왜 피해자와 가해자 외에 화해자도 있다는 것을 간과했을까.“



“참 박사 났네 강연이나 하고 댕기지. 어서 시집을 가서 또 엄마 맹키로 아아를 많이 낳을 끼란 말은 와 안 하노?”

깨달았다는 말로 양지의 내면세계에서 발로 된 많은 생각을 호남은 지겨워한다.

“그래, 세상에 와 공부한 사람하고 안한 사람하고 섞여 살아도 지구가 안 뒤비지는지 인제 알것다. 언니 니도 인자 본께 천상 겉 다르고 속 다르다. 여자만 참고 희생하라 아직도 그런 말이가. 니도 시집 가봐라, 말대로 그리 쉽게 되는가. 말대로 책대로 안 되는 기 결혼생활이다.”

“이제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여자가, 엄마가 제 할일 하는 게 와 희생이고 봉사라고 하노. 그래서 우리는 뭔가 크게 착각하고 살아온 거야. 넝쿨식물처럼 남 따라서 줄기만 뻗어갔지. 너나 나는 스스로의 철학이나 사상보다는 남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대로 휩쓸려왔을 뿐이야. 나는 이제라도 그걸 깨달은 걸 무척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어.”

“하이고 참 징상시리도 끈질기다. 다 지 난 지 복대로 사는 기다 그만 좀 하자.”

“아부지가 아들 낳았다고 나한테 병원비 얻으러 왔다가 입도 뻥긋 못하고 간 날이라 지금도 생생한 기억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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