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9)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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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9)

“우리 회원 중 배신자, 아니 이탈자라고 해야 되나? 하여튼 하나가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도 모자라서 남편의 지원으로 외국유학까지 가는 거야. 그날 축하파티에서 우리 회원들은 그 친구가 부러워서 질투를 하면서 와 그리 안절부절 못했는지. 나는 그때 내가 가진 여자의 속성, 그 모순 된 정체성을 확인하고 깨달았지.”

“듣기 싫다. 참말로 니 와카노. 그거는 언니 니 생각이고, 아무리 아파도 이리 약해지모 안 된다. 니는 우리 집 등불이다. 제발, 딸자슥도 아들자식 못잖다는 거 그거 잊어뿔지 마라. 벌써 치매 든 것도 아니고 우째 그리 사람이 변하노.”

“남이 너라면 나도 네 편들지도 몰라. 그렇지만 너는 내 동생이니까.”

“동생이라고? 흥, 이 나이에 나도 가르침 받을 생각 없은깨 또 그딴 소리 할라카모 앞으로 절대 내 볼 생각 하지마라.”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흉측한 괴물이라도 보듯 양지를 흘겨 본 호남은 양지를 피해 또 밖으로 휭 나가버렸다.



언니가 변했다는 호남의 말을 양지는 인정했다. 그러나 오류를 바로 잡고 이해하는 것이지 사람 자체가 변한 게 아니라는 것은 앞으로 실천해서 보여줄 과제였다.

양지는 창가에서 자신이 꿈꾸었던 나무 한 그루를 살펴보았다. 하늘같기도 하고 오빠 같기도 하고 또 존경할 수도 있는 남자를 만나 제 능력껏 아깃자깃 행복한 주부가 되고 싶었다. 건강하고 잘생긴 아들딸의 손을 잡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찬거리를 사다 오순도순 정겨운 저녁 식탁을 준비하는 여자. 그리고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 하나 쯤 연주 기능을 기르고 아잇샤 아잇샤 가족들과 어울려 배드민턴을 치거나 산책을 다니는 여자, 그리고 이웃들과 어울려 자원봉사를 다니는 여유 있는 정서 생활을 이끌어 가는 주부. 서른 살이 넘자 그런 꿈을 자주 꾸었다. 나아가서는 성공한 남편과 출세한 자식들의 엄마가 되고 싶기도 했다. 또 사회적인 성공도 하여서 측은하고 안쓰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환하고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한 꾸러미씩 선물도 안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들의 거듭된 불상사 때문에 실신 지경인 채 자리보전까지 하고 있다. 사회 체제를 불신하고 자신의 정체성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오만과 편견, 결론적으로 그녀는 자신이 너무 우회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후로 자녀가 생긴다면 자녀들에게 또는 후배들에게는 나처럼 살지 말기를 전언하게 될 거였다. 그러나 아직 찾지 못한, 나처럼 안사는 묘안 때문에 넋 놓을 때가 많았다.

끝없이 부채질 된 생의 욕구는 있는 기준도 지키기 어렵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답변도 모호하지만 형질이 변경되는 방식에 대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묘안의 미로에 빠져 우왕좌왕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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