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1)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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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1)

“내가 그런 책 읽을 여가가 있었나.”

그제야 양지는 저와 동일시한 호남의 처지를 깨닫고 주춤해졌다. 호남이 걸어 온 길을 전혀 배려하지 못한 호사스러운 비유에 그친 설득이다. 그런 예를 들어서 미안하다고 사과 했지만 양지가 내민 손을 호남은 뿌리쳤다.

“요즘 세상에서 돈이 양반이라는 말은 오빠도 그랬듯이 나도 인정한다. 맨 입으로? 하는 말도 있듯이 속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니까. 그렇지만 그 돈이 목적이 돼서 인간심이 변질 돼서는 안 돼. 청빈한 가난은 사람을 겸허하게 만든다고 엄마도 그랬어.”

“놀고 있네. 엄마가 자기 남편을 두둔할라꼬 지어낸 말이다. 춥고 배고파서 오돌오돌 떨어봐라. 그 말에 찬성하는가. 아무튼 나는 갈고리로 솔갈비 긁어모으듯이 많이많이 벌 끼다. 그게 내 소원이다.”

“아이구 답답.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면 세상 사람들 모두 재벌 됐겠다.”

“야튼 됐다. 내가 언내도 아닌께 내 하는 일에 가방끈 흔들면서 일일이 간섭 하자마라. 나도 니가 모르는 세상을 아는 게 있단 말이다.”

파르르 화를 내고 밖으로 나간 한참 후, 다시 들어 온 호남은 울었는지 붉어진 눈시울로 실토를 했다.

“사실은 내가 일하는 집 사장이 가게를 내놓았어. 장사가 괜찮게 되는 가겐데 남 주기는 아깝고 해서….”

그제야 안심이 된 양지는 호남의 가슴팍을 탁치며 소리를 질렀다.

“가시나야! 그라모 그렇다꼬 바로 말해야지 와 그리 사람을 놀리노.”

“날 못 믿고 이리저리 캐물을 게 뻔 하다 아이가. 마, 그리 됐은깨 줄라모 주고 말라모 말아라. 우리 식구들은 날 언제나 시한폭탄으로 인정하는 데 나도 바른 말 나오나.”

한 발 물러서서 넌지시 뱃장 튕기는 여유를 보이는 호남의 손에다 양지는 자신의 전 재산인 통장과 도장을 얹어주었다. 양지의 통 큰 선심에 오히려 당황한 호남이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이걸 다 주모 우짜란 말이고. 이리 많은 돈은 필요 없다.”

“가게를 인수하려면 돈이 들 거 아이가. 인테리어도 새로 해야 손님도 더 많이 끌 수 있을 거고.”

“그렇지만 지금 그대로도 손님은 많아.”

“사업이란 생각지도 않은 자금이 많이 필요한 거잖아. 때 맞춰서 물품 구입도 해야 될 거고.”

“그래, 아무튼 고맙다. 쓸 만큼만 쓰고 돌려줄께.”

바람개비 같은 걸음으로 돌아가는 호남의 옹골찬 뒷모습을 보자 양지는 비로소 안심이 됐다. 적지만 제 노력으로 돈을 벌고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주영을 데리고 오려니 드디어 기회가 주어진 모양이다. 무엇이 아까워서 동생을 못 도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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