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생맥주잔과 헛공약
윤창술(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경일포럼] 생맥주잔과 헛공약
윤창술(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 경남일보
  • 승인 2017.05.0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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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중앙지하도상가의 청년몰인 ‘황금상점 청년CEO 20명’의 체험점포 개점식이 지난 3월에 열렸고, 5월 초에는 진주중앙시장 2층에 ‘청년점포 푸드존인 청춘다락’이 오픈했다. 청년상인 육성을 위해 중소기업청이 실시한 공모사업에서 경남에서는 유일하게 진주시가 선정돼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이다. 진주시는 침체된 전통시장과 원도심에 젊은 활기를 불어넣고자 지난해 9월부터 저마다 사연을 가진 33명 청춘들의 성공을 향한 도전을 지원해 왔다. 필자는 두 사업단의 추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평소 생맥주를 즐기는 관계로 청춘다락의 수제맥주 청년점포 ‘큰 곰 양조장’을 눈여겨보게 됐다.

본보에 따르면 큰 곰 양조장의 창업스토리는 감동적이다. “대학동아리에 가입한 청년은 수제맥주에 빠져들었다. 그는 전국 각지의 맥주만들기 경연대회에 참가하고 전문가들에게도 많이 배우면서 실력을 쌓았다. 또한 대구의 한 맥주회사를 찾아가 대표를 설득해 그곳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진주시의 청년상인 창업지원사업 소식을 듣고 지원한 것이다. 그는 향후 경남에서 제일 큰 맥주 양조장을 지어 경남의 랜드마크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꼭 그가 꿈을 이루길 빈다.

생맥주는 1970년대 프랜차이즈체인점이 생겨나면서 빠른 속도로 국민의 술로 자리 잡았다. 새롭게 등장한 500cc 생맥주 피처 잔도 인기몰이에 한몫했다. 그런데 생맥주 잔의 용량을 속인 게 2012년도에 탄로 나 애호가들이 분노한 적이 있다. 맥주업체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생맥주 잔 용량이 실제보다 작아 피처 잔 자체에 거품이 끼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맥주업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잔의 용량을 속일 수 있고 소비자는 속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를 보면서 헛공약이 연상되는 건 왜일까.

민주국가에서 선거는 정치적 의제가 설정되는 중요한 기회고, 그 의제는 공공성과 책임의식에 기초해 현실성 있는 정책으로 구체화돼야 한다. 선거장사만을 일삼아서 정책검증보다 네거티브가, 안보공약보다 색깔론이 앞서는 바람에 검증되지 않은 공약과 정책들이 난무한 건 아닌지, 그래서 엉터리 생맥주 잔같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국민에게 부담으로 고스란히 남겨지며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대통령후보만의 잘못이 아니라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유권자에게도 책임은 있다.

먼저 대통령후보는 근본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과연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집권해서 국정을 잘 이끌겠다는 각성과 책임감으로 말이다. 내일이면 시작할 새 정부도 정책에 거품이 있는 것은 아닌지 재확인하고 공약집행의 선후와 완급을 어떻게 조절할지 등 근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편 헛공약이 아닌 국민 다수가 공감하는 양질의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A. 토크빌은 강조했다.

민주화 이후 이 정도 선거를 치러 봤으면 유권자들도 이제는 현명해질 때가 됐지 않은가. 특히 촛불정국이라는 초유의 조기대선인 만큼 오늘 하루만이라도 국민분열을 가중시키는 흑색선전이나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않고 바닥으로 실추된 국격과 우리사회 전반의 품격을 끌어올리는 매의 눈으로 투표하면 좋겠다. 그래서 이번 대선만큼은 전도양양한 큰 곰 양조장의 청년상인을 비롯한 유권자들이 속고 절망하는 일이 없길 간절히 바란다.
 
윤창술(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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