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2)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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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2)

호남을 돌려보낸 이틀 뒤 사복을 갈아입은 양지는 병원을 나섰다. 고종오빠에게 전화를 하니 호남이 일하는 불고깃집 위치를 알려 주었다. 몇 번 버스를 타야하는지 몰라 쉬운 대로 택시를 타니 택시 기사는 불고깃집 앞에다 양지를 내려주었다.

초원의 불. 근사하고 번듯한 간판이며 그에 어울리는 건물을 올려다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저 멀리 아스라한 곳까지 농부의 경작지가 펼쳐져 있는 도시의 외곽에다 작정하고 벌인 사업장임을 알 수 있다. 멋진 조경수를 배치한 넓은 주차장이 한 눈에도 기획적인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양지는 절로 흐뭇하고 훈훈해지는 기쁨으로 호남의 배짱처럼 탄탄하게 발전할 미래를 본다. 동생이라고 아심찮게만 보았던 호남이 이런 업체의 주인이 되다니. 비록 전세로 든 임시 주인이지만 이런 기회는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게 아닐 터. 화분이나 꽃이라도 사올 걸. 아니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고 부푼다는 화장지나 가루비누라도 사올 걸. 뒤늦은 축하 선물을 생각하며 주위에 있는 가게를 둘러보는데 한곳으로 쏠렸던 눈을 더 크게 뜬 양지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탄 고기의 기름으로 까맣게 더깨져있는 불판을 포개 들고 건물 뒤에서 나오던 호남이 양지를 발견하자 어, 뜨거라 놀라는 기색을 뿌리며 나온 곳으로 되돌아 도망을 치는 거였다. 무언지 모를 심상찮은 예감이 양지를 못 박히게 했다.

잠시 후에 나온 호남이 왼고개를 친 채 납득 못할 현상으로 어리둥절해 있는 양지 앞으로 양지가 준 통장과 도장이 든 주머니를 내밀었다.

“뭐 한다꼬 여어까지 왔노. 자, 이거 갖고 가라. 얼매 안 썼다.”

뜨악해진 양지가 확인을 한다.

“이게 무슨 뜻이고?”

“안에 들어가서 주인 찾으모 금세 들통 날 거, 사실은 언니한테 거짓말 했다.”

“그러면?”

그래도 양지는 미련을 못 버린다. 설마, 설마 싶은 제 마음을 달래는 시간이 필요했다. 호남은 기막혀하는 양지의 의혹은 풀어주지 않고 제 할 말만 늘어놓는다.

“경찰이가 뭐고, 캐묻지 말고 그냥 덮어주라. 돈은 내가 앞으로 야무치게 착착 갚을 낀깨 걱정 말고, 절대 나쁜데 안 썼은깨 샤일록인가 뭔고 그딴 걱정도 집어쳐라. 아무리 밉다 밉다 캐도 엄마 아부지 딸인데 그리 나쁜 짓은 안 한다.”

“아무리 변명해도 소용없다. 이런 거짓말로 뒤통수치는 데가 어딨노.”

“마, 고마해라 안 카나. 달세 정도로 말할라 캤는데 먼저 크게 나간 건 언니 니 아이가. 거짓말 한 거는 미안하다만 진짜로 기실 생각은 아녔다는 것만 믿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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