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5)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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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5)

“진주에서 전국 최초로 백정들의 인권운동이 일어났었다는 말은 어렴풋 알고 있었는데….”

“사람이 사는 건 의식주만 해결되면 끝나는 게 아니거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절대 평준의 기반이 바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기존 가치 아니겠나? 작은 도시에 학교도 많고 병원도 많고, 서부경남의 중심도시라는 그러싸한 이름에 비해 옛날 것 안 팔면 이렇다하고 내세울 것이 없어. 실제로 들여다보면 너무 나달나달하게 쳐져 있고, 그러니까 일껏 양성시켜 놓은 인재들은 모두 타지로 떠나고 그 여파로 내면은 또 자꾸 침체되고. 자랑삼는 충절과 교육도시의 이름을 바로 세워놓고 내가 먹는 밥값 삼을라는데 모르겠어. 자료가 정리되는 대로 시민사회에 널리 알려 되새기게 할 거야. 우리 진주는 그런 민본을 중시한 도시라는 점을 되찾아서 ‘진주정신’으로 부각시키면 우리 진주에 대한 자긍심도 새롭게 드높아지지 않겠어? 이 일을 시작한 내 취지나 동기는 그래.”

“오빠도 어머니가 무척 그리우신 거구나.”

“그야. 겉으로 표시는 안하지만 나이 들수록 그렇네. 연세 든 어른들을 보면 지금 살아계신다면 내 어머니인 그 분도 저 분들처럼 곱게 늙은 웃음을 머금고 바깥일 보고 들어오는 이 아들의 등을 토닥거려주시겠지. 장하네, 내 아들이 어쩜 그리 기특한 생각을 했을꼬, 자애어린 음성으로 칭찬도 해주시겠지. 너무 사무칠 때는 무덤이라도 파헤쳐보고 보고 싶은 때가 없었던 게 아이라.”

오빠는 속으로 끓어오르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라도 간잔조리는지 맞잡은 손의 엄지를 자꾸 맞돌리고 있었다.

“내 조상인 백정들의 형평운동은 민주주의 정신의 기반을 역동적으로 꿈틀거리게 했는데 그 운동의 연원에는 갑오농민전쟁이 있어 일본과 서양의 강대국들이 노리는 조선을 지키기 위해, 우리 민족의 생존을 외면한 채 외국 세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지배층에 대항하여 싸웠고 그들은 진주에서 정부군과 화해하는 약속을 하면서 대대적인 사회 개혁안을 요구하기도 했던 역사가 있어. 개혁안에는 노비문서를 불태워 없애고 천민들에 대한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이 머리에 쓰는 패랭이를 없애라는 주장도 있었는데 천민 신분의 굴레를 없애고 똑 같이 대우하라는 데까지 발전을 했어.“



“아, 그러고 보니 엄마의 친정 아저씬지 오라버닌지 하는 분도 그 운동의 주축이 되어 활동하셨다는 얘기를 오빠 만나고 나서 엄마한테 들었어요.”

“외숙모님 친정, 강 씨들 지역을 대표하는 양반 가문인데 대단한 분들이시지.”

“거기 앞장선 몇 몇 분들도 설득 안 되는 양반 집안의 가풍 때문에 집안에서 축출당할 뻔 하기도 했다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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