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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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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4  21: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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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6)

“그렇지. 기득권을 점유하고 있는 양반이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운동에 앞장 선 것은 열린 사고와 세계관 나아가서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확고한 신념 없이는 감히 낼 수 없는 용기였지. 이런 항심이 근대 진주역사의 원동력이고 굳건한 애민 정신인데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맥을 못 추고 가라앉아 버린 거라.”

“요즘 사람들 고기 잘 먹잖아요. 고기 먹고 싶으면 찾는 곳이 정육점이고 정육점 사람들 경제도 윤택하잖아요. 아무리 사농공상으로 신분의 차이를 논했던 사회였다지만 정육업자를 백정이라는 이름으로 그토록 불가촉천민 취급을 한 유래가 궁금해요. 제가 역사를 잘 모르니까 가르쳐주세요.”

“여기 자료집을 찬찬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역사적으로 백정이라는 말 자체는 원래부터 천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았고 세금이나 병역의무를 지지 않던 특수 집단의 일반인을 뜻하는 거였단다. 그들은 일반 사람들과 떨어져 살았고 한 지역에 정착해서 살지도 않았단다. 조선시대로 넘어 오면서 세종대왕은 일반 사람들과 동화하여 정착해 살도록 권장하였고 명칭도 보통사람이란 뜻으로 백정으로 바꾸었어. 그렇지만 말 그대로 천민은 비천한 사람들이란 인식이 바뀌지는 않았지. 거기 읽어보면 이런 목멘 울음소리도 나올 끼라. 내가 타고 난 이 마을은 피촌 또는 백정촌…. 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을 가리켜 ‘칼잡이’니 ‘백정놈’이라고 한다. 이 지역 외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은 수백 년이라는 긴 시간을 내려오며 대대손손 잊어버리지도 않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 보다 백정놈 백정년 백정새끼라고 한다. 이것이 내가 타고 난 우리 집은 물론이고 우리의 이웃 사람, 그 외에도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무리에 대한 유일한 대명사였다. ‘ 그런 맥락에서 형편운동은 신분제의 찌꺼기를 없앤다는 과거 유산의 극복 측면에서, 또 평등사회를 향해 나간다는 미래 지향의 측면에서 아주 대단한 주목을 끌었지.”

양지가 잠시 눈으로 훑어 본 자료 속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 1923년 4월24일. 한반도 남쪽 끝에 있는 경상남도 진주면 대안동의 진주청년회관에는 약 7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백정출신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은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아 온 백정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인간 대우를 실행하고자하는 단체의 첫 모임이었고 큰 걸음이었다. 형평사 기성회가 열린 진주청년회관은 지역사회운동의 요람이기도 했다. 그곳은 진주지역 사회운동의 중심지였고 그런 곳에서 형평사 기성회가 열렸다는 사실 자체가 진주 사회운동가들의 관심 속에서 시작되었음을 형평운동이 보여주는 것이었다. -



자료 문에서 눈을 뗀 양지가 아까보다 밝은 얼굴로 장현동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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