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7)
“그 자리에서부터 그럼 오빠네 어른들과 우리 외갓집 어른들은 뜻을 같이하고 만나셨겠어요?”
“그렇지. 뒤에 보면 성함도 일부 나올 걸”
“그렇지? 동지가 반이면 적군도 반인 게 인간 사회라. 이 부분을 보면 동생 같은 사람은 곧 이해하고도 남을 끼고만.”
양지 앞에 놓인 자료집을 끌어당겨 자기 앞으로 놓은 오빠는 몇 장을 넘겨짚어 보였다. 양지는 또박또박 입소리를 냈다.
“형평사에 관계하는 자는 백정과 동일한 대우를 할 것. 쇠고기를 절대 사먹지 않을 것을 동맹할 것. 진주청년회에 형평사와 관계 맺지 못하게 할 것. 노동단체에 형평사와 관계 맺지 못하게 할 것. 형평사를 배척하게 할 것. 1923년 5월 형평운동 반대활동을 벌인 진주 사람들의 결의사항. 이런 걸 보면 역시 우리나라는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외세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냥 이대로 살지. 우리 사는데 아무 문제도 없는데 와 이런 분란을 일으켜서 집안 망신시키고 사회질서를 혼란하게 들끓이는데 우리 가문의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니 가문의 수치다 수치. 새 백정이 뭐꼬 새 백정이! 저 그런 말이 나왔던 것도 알아요.”
“역시 동생답네. 편협한 보수주의자들인 수구세력의 입장에서는 수 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백정차별의 관습이 무너지니 얼마나 두렵고 싫었겠어. 새 백정 소리를 듣는 지도자의 집에는 돌을 던지고 지금의 진주고등학교 자리에 소를 끌어다 놓고 새 백정 나와서 소 잡아라, 외쳐대며 협박도 했어. 참 기막힌 현상이 또 하나 있었는데 기독교 신도들조차 백정들과 함께 예배를 볼 수 없다며 교회를 박차고 나갔어. 사회인심이 그렇게 흉흉하고 맞아죽은 형평사원도 나오니 진주의 여러 사회단체들은 이 충돌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문제의 발단을 파악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노력했지. 백정 해방에만 머무르지 말고 사회전체를 개혁하는데 협력하자는 시국강연연사의 주제발표도 참조하면서 형평사의 혁신회의 출발은 전체 사회흐름의 한 가운데로 들어갔지. 따지고 보면 신분차별 혁파와 경제성장 이 모든 것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요건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람과 사람간의 화합을 위해서 쓰일 때에만 진정한 효력을 나타내는 거라. 그런데 또 요즘 세상을 보면 너무 경제관념에 치우친 나머지 빈부로 인한 새로운 신분의 격차가 생겨서 인격추락을 자행하는 지경이라 속이 안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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